더 컬럼스 갤러리 2006.4.20~5.21
http://www.columns.co.kr
7년전 나의 작업 방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 나의 작품들은 추상적이고 미니멀했으며 쉽게 회화로 분류되었다. 이전의 평면적이고 착시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나는 패널을 깎고 다듬어 굴곡을 만들고 굽어지는 듯한 표면에 운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광택이 나는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로 마무리 코팅을 시도했다.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모노크롬 형체에 나는 조형적 특성을 가미해 다소 오브제스러운 페인팅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이 새로운 작품을 조각으로 보지는 않는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단지 페인팅을 하는데 있어 보다 더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진화 혹은 반전이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형식을 페인팅과 조각의 중간 단계로 분류하려는 많은 관객들의 반응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여전히 페인팅을 하고 있으므로…
또 다른 극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6개월 전 일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조각 페인팅이 안고 있는 사이즈와 무게 제한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행해졌던 프로세스는 나의 창의력을 많이 소진시키고 있었다. 작품에 만족은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컨셉을 조금 더 확장시켜 보고 싶었었다. 게다가 색의 대비와 조화를 즐기는 나는 본능적 재주가 이 단색을 기조로 한 새 작업 방식에 거의 소용되지 못했기에 그 욕구가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색채와 색채의 대화 혹은 어우러짐이 발견되는 때는 전시장에 나란히 걸려있을 때였다.
두 달에 걸친 연구 끝에 "혼합"이라는 컨셉이 태어났다. "혼합"은 크게 사각형을 이루는 여섯 개의 페널로 구성된다. 맨 윗줄에는 세 개의 작은 사각형, 가운데에는 보다 큰 두 개의 직사각형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하나의 긴 직사각형이 놓이게 된다. 위쪽의 세 패널은 각기 다른 색이고 아래의 두 색은 위의 색을 서로 혼합한 색이고, 마지막은 위 모든 색의 혼합이 된다. 각각의 패널들은 독립적인 모노크롬 작품이지만 함께 모아 놓으면 보다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색채를 이루어 낸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색의 수와 패널의 개수가 줄어드는 방식은 단순화되는 과정을 나타내고 이것은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보여지는 나의 성향이기도 한다
지난 12월, 나는 다가올 더 컬럼스 아트센터 전시회를 위해 패널들을 구성하기 시작했고 3월에 첫 "혼합"을 완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선, 나는 위에 올라가는 처음 세가지 색을 선정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어느 색을 조합해도 늘 흥미로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업게 되었다. 하지만 곧 나는 본질적으로 많은 차이를 안고 있는 색을 조합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패치워크 같은 느낌을 주게 되고 이는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 감상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나는 혼합 과정에서 요구되었던 정교함과 치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별적 패널 하나 하나의 색채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었지만 완성된 여섯 개의 패널들은 특별한 배치 방법 없이도 서로 너무 쉽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어느새 "내가 페인팅을 하고 있었다!"라는 사실이었다. 페인팅에 조각 같은 입체감을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페인팅의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개념이고 미적인 가능성들을 상실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혼합"을 통해서 나는 회화가 지니는 시적이라고 할까, 잔잔한 이야기 같은 느낌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다음의 세 페인팅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듯하다. 하나하나 모두 지금 막 나의 옛 친구를 다시 만났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Bill Thompson
March 2006
1997년 소호의 인칸 갤러리에서 뉴욕 첫 데뷔전을 가진 빌 탐슨의 작품은 그와 10년 째 전시를 해오고 있는 장동조 디렉터와의 인연 속에 꾸준히 그리고 매우 논리적인 방향으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 왔다. 10여년 전, 엘리노어 하트니가 보았던 "미니멀리즘의 전형"은 그대로 간직한 채, 때로는 형태로, 때로는 장르로 포커스를 옮기며, 스스로 고백하듯, 안에서 일고 있는 변화에 대한 욕구와 열망을 치열하게 실험해 왔다. 미니멀 회화의 아이콘인 엘스워스 켈리에 견주어지며 미니멀리즘을 단지 시각적 요소의 절제 혹은 축소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확장과 융합이라는 차원에서 보다 더 다변적이고 넓은 개념으로의 접근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개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숨기고 축소하고 요약하는 미니멀리즘을 생각할 때 일견 모순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보다 더 직접적이고 생명력 풍부한 상태로 요약될 수 있고 그 단순화 과정은 삭제가 아니라 오히려 발견이라는 작가의 말을 생각해 볼 때 시작과 끝, 소멸과 소생의 그 간극에 얼마나 큰 생명력과 풍부한 창조의 힘이 응축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평면 작업에 입체적 조형미를 시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빌 탐슨은 운동감(action)과 관계 (relationship)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다양한 형태와 색의 조합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2000년에 이어 2년 간격으로 선보인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어떠한 생각과 실험의 경로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미니멀리스트의 운동감이라면 언뜻 상상이 되지 않지만 두툼한 패널을 깎고 다듬어 굴곡을 만들고, 굽이치는 듯한 표면에 광택이 나는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로 마무리한 작품은 작품 스스로가 지니는 입체적 바탕의 운동감을 기본으로, 페인트와 빛이 엮어내는 리듬감과 관객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형태와 색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다변성까지 아우르며 '고요하게 외치는' 새로운 형태의 미니멀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2004년의 작품들이 운동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더 컬럼스에서의 전시를 앞두고 다시 일기 시작한 변화에 대한 욕구는 사이즈와 무게의 제한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작가가 이 새로운 컨셉을 더 확장시키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고 그 결과 "혼합" (Mixer)이라는 시리즈의 작품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여러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패널의 조합으로 구성된 "혼합"은 패널과 패널과의 색채적 관계, 형태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며, 실험이다. 각각 독립적인 모노크롬 페인팅이기도 한 개별 패널들은 어울려 하나의 역동적인 작품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색과 색의 은밀한 속삭임과도 같은 정적이고 신비로운 내음을 살며시 풍기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조각 페인팅으로 변화를 시도했던 작가의 작품이 어느새 다시 잔잔한 회화적 내러티브를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작가 자신도 "스스로가 어느새 다시 페인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놀라워할 정도로 그의 탐험이 매우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문제 제기와 결론의 과정을 거쳐 나왔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번 "Mixer" 展이 단순히 전시의 개념을 표현한 타이틀에 머물지 않고 관객의 시선과 느낌과 생각들이 작가의 이야기와 함께 엮여 나갈 수 있는 "혼합"된 기능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지연 curator GOEDHUIS CONTEMPORA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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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THOMPSON - "MIXER"
7년전 나의 작업 방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까지, 나의 작품들은 추상적이고 미니멀했으며 쉽게 회화로 분류되었다. 이전의 평면적이고 착시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나는 패널을 깎고 다듬어 굴곡을 만들고 굽어지는 듯한 표면에 운동감을 부여하기 위해 광택이 나는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로 마무리 코팅을 시도했다.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모노크롬 형체에 나는 조형적 특성을 가미해 다소 오브제스러운 페인팅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이 새로운 작품을 조각으로 보지는 않는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단지 페인팅을 하는데 있어 보다 더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얻어진 자연스러운 진화 혹은 반전이었다. 그러므로 이 새로운 형식을 페인팅과 조각의 중간 단계로 분류하려는 많은 관객들의 반응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여전히 페인팅을 하고 있으므로…
또 다른 극적 변화에 대한 욕구가 6개월 전 일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조각 페인팅이 안고 있는 사이즈와 무게 제한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행해졌던 프로세스는 나의 창의력을 많이 소진시키고 있었다. 작품에 만족은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컨셉을 조금 더 확장시켜 보고 싶었었다. 게다가 색의 대비와 조화를 즐기는 나는 본능적 재주가 이 단색을 기조로 한 새 작업 방식에 거의 소용되지 못했기에 그 욕구가 더 했을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색채와 색채의 대화 혹은 어우러짐이 발견되는 때는 전시장에 나란히 걸려있을 때였다.
두 달에 걸친 연구 끝에 "혼합"이라는 컨셉이 태어났다. "혼합"은 크게 사각형을 이루는 여섯 개의 페널로 구성된다. 맨 윗줄에는 세 개의 작은 사각형, 가운데에는 보다 큰 두 개의 직사각형 그리고 마지막 줄에는 하나의 긴 직사각형이 놓이게 된다. 위쪽의 세 패널은 각기 다른 색이고 아래의 두 색은 위의 색을 서로 혼합한 색이고, 마지막은 위 모든 색의 혼합이 된다. 각각의 패널들은 독립적인 모노크롬 작품이지만 함께 모아 놓으면 보다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색채를 이루어 낸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색의 수와 패널의 개수가 줄어드는 방식은 단순화되는 과정을 나타내고 이것은 작품 활동 전반에 걸쳐 보여지는 나의 성향이기도 한다
지난 12월, 나는 다가올 더 컬럼스 아트센터 전시회를 위해 패널들을 구성하기 시작했고 3월에 첫 "혼합"을 완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선, 나는 위에 올라가는 처음 세가지 색을 선정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어느 색을 조합해도 늘 흥미로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업게 되었다. 하지만 곧 나는 본질적으로 많은 차이를 안고 있는 색을 조합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패치워크 같은 느낌을 주게 되고 이는 하나의 통일된 작품으로 감상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나는 혼합 과정에서 요구되었던 정교함과 치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별적 패널 하나 하나의 색채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되었지만 완성된 여섯 개의 패널들은 특별한 배치 방법 없이도 서로 너무 쉽게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어느새 "내가 페인팅을 하고 있었다!"라는 사실이었다. 페인팅에 조각 같은 입체감을 시도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페인팅의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개념이고 미적인 가능성들을 상실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혼합"을 통해서 나는 회화가 지니는 시적이라고 할까, 잔잔한 이야기 같은 느낌을 새로이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다음의 세 페인팅들은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듯하다. 하나하나 모두 지금 막 나의 옛 친구를 다시 만났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Bill Thompson
March 2006
아트인 컬쳐 review
1997년 소호의 인칸 갤러리에서 뉴욕 첫 데뷔전을 가진 빌 탐슨의 작품은 그와 10년 째 전시를 해오고 있는 장동조 디렉터와의 인연 속에 꾸준히 그리고 매우 논리적인 방향으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해 왔다. 10여년 전, 엘리노어 하트니가 보았던 "미니멀리즘의 전형"은 그대로 간직한 채, 때로는 형태로, 때로는 장르로 포커스를 옮기며, 스스로 고백하듯, 안에서 일고 있는 변화에 대한 욕구와 열망을 치열하게 실험해 왔다. 미니멀 회화의 아이콘인 엘스워스 켈리에 견주어지며 미니멀리즘을 단지 시각적 요소의 절제 혹은 축소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확장과 융합이라는 차원에서 보다 더 다변적이고 넓은 개념으로의 접근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개념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드러내는' 것이다. 숨기고 축소하고 요약하는 미니멀리즘을 생각할 때 일견 모순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보다 더 직접적이고 생명력 풍부한 상태로 요약될 수 있고 그 단순화 과정은 삭제가 아니라 오히려 발견이라는 작가의 말을 생각해 볼 때 시작과 끝, 소멸과 소생의 그 간극에 얼마나 큰 생명력과 풍부한 창조의 힘이 응축되어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평면 작업에 입체적 조형미를 시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빌 탐슨은 운동감(action)과 관계 (relationship)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다양한 형태와 색의 조합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2000년에 이어 2년 간격으로 선보인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어떠한 생각과 실험의 경로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미니멀리스트의 운동감이라면 언뜻 상상이 되지 않지만 두툼한 패널을 깎고 다듬어 굴곡을 만들고, 굽이치는 듯한 표면에 광택이 나는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로 마무리한 작품은 작품 스스로가 지니는 입체적 바탕의 운동감을 기본으로, 페인트와 빛이 엮어내는 리듬감과 관객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형태와 색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다변성까지 아우르며 '고요하게 외치는' 새로운 형태의 미니멀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2004년의 작품들이 운동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더 컬럼스에서의 전시를 앞두고 다시 일기 시작한 변화에 대한 욕구는 사이즈와 무게의 제한으로 인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작가가 이 새로운 컨셉을 더 확장시키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고 그 결과 "혼합" (Mixer)이라는 시리즈의 작품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여러 개의 서로 다른 크기의 패널의 조합으로 구성된 "혼합"은 패널과 패널과의 색채적 관계, 형태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며, 실험이다. 각각 독립적인 모노크롬 페인팅이기도 한 개별 패널들은 어울려 하나의 역동적인 작품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색과 색의 은밀한 속삭임과도 같은 정적이고 신비로운 내음을 살며시 풍기기도 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조각 페인팅으로 변화를 시도했던 작가의 작품이 어느새 다시 잔잔한 회화적 내러티브를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작가 자신도 "스스로가 어느새 다시 페인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놀라워할 정도로 그의 탐험이 매우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문제 제기와 결론의 과정을 거쳐 나왔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번 "Mixer" 展이 단순히 전시의 개념을 표현한 타이틀에 머물지 않고 관객의 시선과 느낌과 생각들이 작가의 이야기와 함께 엮여 나갈 수 있는 "혼합"된 기능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지연 curator GOEDHUIS CONTEMPORAR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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