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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Installation & Sculpture

* Louise Bourgeois (루이스 브르주아)

by @artnstory 2007. 5. 15.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 전시되었던 루이스 브르주아 의 이 작품을 보고 감탄했던 게 2001년이었지,
거미. 이 작품이 지금 리움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 뉴욕에서보다도 더 충격적이다.
뉴욕은 높은 빌딩숲속에 나타난 거미가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탈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리움미술관위에 보이는 거미는 주택가를 덮친 느낌이다. 곧 그 일대를 장악하려고 보이는.
환경에 의한 조각의 의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만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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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거미의 다리는 여자의 나약함을 상징하고,
거미의 알은 여자의 다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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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n, 1999. Bronze and steel, 30 feet 5 inches x 29 feet 3 inches x 33 feet 7 inches, Edition of 6, 1 A.P. Guggenheim Museum Bilbao. © Louise Bourgeois/Licensed by VAGA, New York, NY.

 국제갤러리  
 2007.4.20 - 2007. 6.29 (신관)
 2005. 4.12 - 2005. 5.13
http://www.kukje.org/

 
국립현대미술관
루이스 브르주아-기억의 공간
2000.9.7 ~ 2000.11.5
http://www.mo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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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Woman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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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브르주아
Louise Bourgeois


[French-born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 Sculptor, born in 1911] 대대로 타피스트리(tapestry 융단) 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8살 때부터 드로잉을 하면서 사업에 참여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시절에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은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는 부르주아에게 삼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정점에 이른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70년대 말부터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여성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는 이후로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 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 미술관들과 주요 컬렉션들에 소장되어 있다. 학계(예일대학과 메사츄세츠 미술대학)로부터는 명예 학위를,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문화훈장과 일본문화협회로부터는 세계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약력

1905
조세핀 발레리 포리오와 루이 이사도르 부르주아는 파리에서 결혼한다. 루이와 조세핀은 조세핀의 어머니가 생 제르맹가에서 운영하는 태피스트리 갤러리 (중세, 르네상스 태피스트리를 수선, 판매)인 메종 포리오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1911
루이스 죠세핀 부르주아가 파리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세 명의 남매 중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다.

1921
1921-27 루이스는 열두 살부터 부모 일을 돕기 위해 태피스트리 갤러리에서 수복할 부분의 밑그림을 그리곤 한다.

1922
루이스 형제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세이디 고든 리치몬드가 가정 교사로 고용되어 루이스의 집에서 1932년까지 함께 살게 되며 그러는 중에 세이디는 아버지의 정부가 된다.

1932
부르주아는 파스칼과 칸트를 연구한 철학 논술로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대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한다. 어머니 조세핀이 사망한다.

1933
1933-38 부르주아는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고 미술공부를 시작한다. 그녀는 몽파르나스와 몽마르트에 있는 여러 화가의 작업실에서 공부한다. 부르주아 는 모스크바 극장의 연극과 러시아 구축주의 작품을 보기 위해 두번째 러시아 여행을 떠난다.

1936
부르주아는 독립하여 파리에 아파트를 구한다. 같은 건물 1층에 앙드레 브르통이 그라디바화랑을 운영하면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1938
아버지의 태피스트리 갤러리의 일부공간에서 자신의 갤러리를 개관한다. 들라쿠르와, 마티스, 르동, 발라동, 보나르의 드로잉과 판화를 취급한다.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를 만나 결혼한다.

1938
1938-39 부르주아는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1939
1939-45 부르주아는 뉴욕의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판화 작업을 시작한다. 1940-50년대 부르주아는 미술사학계의 인사들 뿐 아니라 유명 화랑주와 작가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1939
부르주아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판화전에 작품을 출품한다.

1940
부르주아의 첫째 아들 장 루이 부르주아가 태어난다.

1941
둘째 아들인 알랭 매튜 클레망이 태어난다.

1945
첫 개인전, "루이스 부르주아의 회화"전이 뉴욕의 버싸 쉐퍼 갤러리에서 열린다.

1949
뉴욕의 페리돗 갤러리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최근작 1947-1949: 나무로 만든 17점의 입상"전으로 조각가로 데뷔한다.

1951
알프레드 바 관장이 <잠든 형상>(1950)을 구입하여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소장된다. 아버지 루이 부르주아가 사망한다. 부르주아는 미국시민권을 얻는다.

1956
휘트니 미술관이 작품<한 사람과 다른 사람들>(1955)을 구입한다.

1966
뉴욕의 피쉬바흐 갤러리에서 루시 리파드가 기획한 그룹전 "기이한 추상"전에 참여한다. 부르주아의 작품은 에바 헤세, 브루스 노먼 등과 함께 젊은 세대부문에 전시된다.

1967
1967-68 대리석과 청동 작업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삐에뜨라산타를 처음 방문한다. 그녀는 72년까지 이곳을 정기적으로 찾는다.

1970
부르주아는 시위, 집회, 토론과 전시 활동 등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1974
부르주아는 그린 가 갤러리에서 개인전 "조각 1970-1974"을 갖는다. 그녀는 뉴욕 시각예술학교, 콜럼비아 대학교, 쿠퍼 유니언, 버몬트주에 있는 고다르 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1977
예일 대학교에서 미술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는다.

1980
루이스는 국립여성미술간부협회로부터 시각예술부문 공로상을 받는다. 브루클린에 작업실을 확보하고 대형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뉴욕의 맥스 허친슨 갤러리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도상학" 전시에 그녀의초기 회화 30여점과 드로잉 35여점, 판화가 12점 전시된다.

1981
시카고 대학교의 르네상스 연구학회는 "루이스 부르주아: 집 여자"전을 기획한다.

1982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루이스의 회고전이 열린다. 데보라 와이와 알리시아 레그가 공동기획한 이 전시는 MOMA에서 열린 첫 여성 작가 회고전으로서 휴스턴 현대미술관, 시카고 현대미술관과 오하이오의 에이크론미술관을 순회한다. 로버트 밀러 갤러리는 조각과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부르주아의 진실"전을 개최한다. 로버트 밀러 갤러리는 루이스의 전속 갤러리로 80년대, 90년대 정기적으로 그의 작품을 전시한다.

1983
뉴욕의 예술문학학회와 미국학술원의 위원으로 선임되며 보스턴의 메사추세츠 미술대학교로부터 미술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문학학회 위원으로 선임된다.

1985
"루이스 부르주아"전이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다.

1989
유럽에서의 첫 회고전인 "루이스 부르주아: 회고전"이 프랑크프루트 미술협회에서 개최되며 뮌헨의 레벤바흐 시립미술관, 리옹의 현대미술관, 바르셀로나의 타피에 재단, 베른미술관, 오테를로의 크뢸러-뮐러 미술관을 순회 전시한다.

1990
뉴햄프셔의 맥도웰 콜론지 재단에서 맥도웰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또한 뉴욕의 조각 센터로부터 올해의 조각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1991
피츠버그의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부르주아의 <밀실l>연작 6점이 전시된다. 부르주아는 워싱턴의 국제 조각센터에서 수여하는 평생 공로상의 첫 수상자가 된다. 또한 프랑스 문화부에서 수여하는 조각부분의 최고상을 수상한다.

1992
"도큐멘타 9 Documenta Ⅸ"전에 부르주아의 <값진 액체>가 전시되고 퐁피두센터가 이 작품을 구입한다. 뉴욕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은 소호 분관의 개막전으로 "브랑쿠지에서 부르주아까지: 구겐하임 소장품"전을 기획한다.

1993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의 대표로 참가하여서 80년대부터 90년대 부르주아의 최근작들을 전시한다. 대규모 기획전이 브룩클린 미술관,워싱턴의 코르코란 아트갤러리를 순회 전시한다.

1994
세인트 루이스 미술관에서 '숭고함의 현주소: 바넷 뉴먼과 루이스 부르주아의 초기작품: 인물'전, 히노버 케스트너 협회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판화 회고전'이 열린다.

1995
"루이스 부르주아"전이 멕시코의 몬테레이에 있는 마르코에서 열리고 세빌의 현대미술센터와 멕시코시의 루피노 타마요 미술관을 순회한다. 파리 국립 근대미술관은 순회전 "루이스 부르주아: 회고: 조각, 환경, 드로잉, 1944-1994"전을 선보인다.

1996
부르주아는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참가한다. 버클리 대학의 태평양 필름 기록보관소와 동 대학미술관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드로잉"전이 열리고 뉴욕의 드로잉 센터로 순회한다.

1997
프랑스 정부는 신축 국립도서관 조형물의 제작을 부르주아에게 의뢰한다. 이를 위하여 부르주아는 <너와 나>작품을 제작한다. 밀라노의 프라다재단에서 " 루이스 부르주아 : 푸른 날과 핑크빛 날"전을 기획 전시한다. 미국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수여하는 예술국가훈장을 수상한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은 새 야외 조각 정원에 설치하기 위하여 대작 <거미 Spider>(1997)를 구입한다. "루이스 부르주아"전이 동경의 요꼬하마미술관에서 열린다.

1998
"루이스 부르주아"전이 프랑스 보르도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리스본의 베렘 재단, 스웨덴의 말모 아트홀,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순회 전시 한다. 뉴욕의 차임 앤 리드 갤러리에서 "베이컨, 부르주아, 매서슈미트"전이 열린다.

1999
"루이스 부르주아"전이 베일레펠드 미술관에서 열린다. 부르주아는 일본 예술재단에서 수여하는 조각부분의 최고 황제상을 수상한다. 제 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다. 그녀는 생존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에게 수여되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다.

2000
테이트 현대미술관의 개관을 위한 작품 제작을 의뢰받고 부르주아는 360인치 크기의 대형 거미와 계단과 거울을 이용한 3개의 강철로 된 건축탑을 제작, 설치한다. 프랑스의 국립현대미술기금은 청동과 화강암으로 된 작품, <환영하는 손>을 튈르리 공원에 영구설치하기 위해 구입한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 기억의 공간"전이 개최된다.

2001
비엔나에 있는 빌덴데 미술 아카데미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 전시는 쿤스 트라움 잉스브룩으로 순회하며 열린다. 대규모 청동 작품인 <거미> 세 점이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