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2006.
갤러리 현대
2004.12.15~2005.1.16
뉴욕에서 지낼 때, 카네기 홀 가는 길에 있는 9 빌딩이 인상깊었다.
건물도 멋들어진데다 앞에 있는 9 숫자가 범상치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한다.
재클린 케네디가 오나시스 성을 갖게 되면서 받은 건물이라고 들었다.
선물 한번 확실하게 한다!
그 조각 작품이 바로 로버트 인디애나 의 작품이었다.
알파벳이 멋진 건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한글로 이런 작업을 해도 정말 멋지지 않을까?
최근에 패션디자이너"이상봉"의 한글 패턴으로 이루어진 의상 역시 색다르고 돋보인다.
나도 애국자인가보다.
전시소개
갤러리 현대에서는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전시를 개최합니다. 올해로 75세인 로버트 인디애나는 그의 대표작인 LOVE의 작가로도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려한 색깔로 입혀진 알루미늄 조각의 숫자와 ART등의 작품등이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팝아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상응하여 갤러리 현대는 국내 최초로 생존하는 팝아트의 대표작가인 로버트 인디애나의 개인전을 오랜기간 준비하여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감상의 시간이 되시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인디애나주 뉴캐슬에서 로버트 클락의 이름으로 출생한 작가는 17살이 될때까지 부모님을 따라 21번을 이사하였습니다. 21번의 이사를 하면서 각각의 이사때마다 그의 마음에 각각의 숫자로 각인되었으며 이때부터 숫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인디애나의 성장 환경과 이웃, 친구들은 이후 인디애나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훗날 로버트 인디애나는 자신의 첫 작품인 The American Dream에서 자신의 American Dream은 깨졌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Chicago Art Institute)에서 회화와 그래픽을 전공한 후 1953년 장학금을 받고 에딘버러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작업 초창기에 그는 도시 고속도로나 뉴욕의 항구 등에 버려진 도시의 폐기물, 도로의 표지판, 카페에 걸린 재즈 공연 광고 등에 쓰인 화려한 색깔등에 착상하여 페인팅과 조각 작업들을 하였습니다. 1954년부터 1978년까지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그의 고향인 인디애나주를 딴 로버트 인디애나로 바꿉니다.
당시 뉴욕은 미드타운에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주류를 이루는 반면 다운타운에서는 앤디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로 대표되는 팝아티스트들의 그래픽을 이용한 미술이 시작되고 있는 때였습니다. 팝아트는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일어났던 미술 사조로서 추상표현주의의 엄숙성에 반대하고 TV나 길거리 표지판, 광고 등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입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생존하는 팝아트 작가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미술 공구들을 팔면서 자연스럽게 뉴욕 미술계와 친해지게 됩니다.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등과 이웃으로 지내면서 그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엘스워스 켈리를 만나면서부터 하드에지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그의 작가로서의 커리어는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의 Art Assemblage展에 참여하면서입니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그의 작품인 The American Dream #1(1961)을 구입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로버트 인디애나는 점차적으로 팝아트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1965년 크리스마스 카드에 작가가 디자인한 문구들이 처음 들어간 뒤 작가는 단어 및 숫자들을 회화, 조각으로 발전시킵니다. 이후 1966년 아인트호벤 미술관 크레펠드, 스투트가르트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1968년 카셀 도큐멘타 IV 에 10개의 페인팅을 제작하며 대표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유명한 유럽 컬렉션에 소장되기도 합니다. 1971년 크리스마스에는 뉴욕 센트럴파크(Central Park)에서 3m66cm의 대작 LOVE를 제작하여 전시한 후, 보스톤 시티홀 플라자(City Hall Plaza)에서 다시 전시된 후,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Indianapolis Museum of Art)에 영구 소장됩니다. 더욱이 1973년에는 발렌타인우표(Valentine Stamp)라고 하여, 그의 LOVE는 8센트짜리 우표로까지 만들어지게 됩니다. 특별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우표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었는데, 인디애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커미션으로 단돈 $1,000을 받고 수락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약 330,000,000개의 우표가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1978년 그의 전속 갤러리였던 드니스 르네 갤러리가 뉴욕에서 철수함에따라 뉴욕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접게되었습니다. 이후 메인(Maine)주의 바이날하벤(Vinalhaven)에 거주하면서 몇몇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1980년에 그는 10개의 숫자를 조각으로 발전시키기에 이릅니다.
최근에는 2003년도에 미국 뉴욕의 파크 애비뉴(Park Avenue)에 그의 숫자number 시리즈 0부터 9까지를 전시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되는 계기가 됩니다. 동시에 뉴욕의 두 화랑 Paul Kasmin Gallery와 C&M Gallery에서의 전시는 뉴욕에서의 20년 넘게만에 개최된 개인전이었습니다. 한 자리 수만을 고집하는 작가의 철칙에 의해 0부터 9까지의 숫자는 출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아트뉴스매거진(ArtNews)의 크리틱인 바바라 매가덤 (Barbara MacAdam)은 “그래픽적인 요소로써의 팝 아트, 동시에 그것이 가지는 깊은 감성은 팝적이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준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 특히, 2003년 파크 에비뉴 전시를 기점으로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의 경매를 통해 좋은 결과를 기록하며 많은 컬렉터 및 미술 애호가들에게 집중적인 재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갤러리 현대 전시에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LOVE, ART 외에도 파크애비뉴에서 전시되었던 Number시리즈가 전시됩니다
“Love는 단순하다 사랑도 단순한게 좋다.”
약 력
1928 |
9월 13일 인디애나주 뉴캐슬에서 태어남 |
1942 |
아스널 기술고등학교 Arsenal Technical High School 입학 |
1946 |
동 고교 졸업 |
1945 |
죤 헤론 예술학교 John Herron Art Institute 토요과정 수강 |
1946 |
죤 헤론 예술학교에서 국비 예술장학금으로 수학할 수 있는 자격 취득, 그러나 미공군 복무관계로 포기 |
1947~ |
로마, 뉴욕체류 |
1949~ |
공군전역 후 시카고 예술학교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입학, 회화와 그래픽아트 전공 |
1953~ |
메인의 스코웨건 미술대 Skowhegan School of Painting and sculpture 여름학기 장학생으로 선발됨 |
1954 |
런던대 University of London 여름세미나 참석 후 미국으로 복귀 후 뉴욕에 |
1978 |
년 말까지 뉴욕에서 주로 거주함 |
1958 |
성요한 성당 Cathedral of Saint John the Divine에서 임시직 얻은 후 이 곳에서 필사본 책을 십자가 위에 전사 하는 작업을 함 |
1961 |
뉴욕현대미술관 MoMa 기획 “조립의 기술”전 The Art of Assemblage에 출품 |
1962 |
뉴욕 스테블 갤러리 Stable Gallery에서 첫 개인전 |
1963 |
뉴욕 발레 시어터 New York Theater for the Ballet “할레루야 가든”의 의상디자인을 최초로 담당 |
1964 |
영화 “먹다” Eat에서 앤디 워홀과 공동작, 이 영화에서 인디애나가 느린 동작으로 버섯을 먹는 장면이 있음. |
1966 |
버질 톰슨의 뮤지컬 “Edges”에서 주제로 다루어짐 |
1967 |
버질 톰슨과 게르투르드 스타인의 오페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 The Mother of Us All에서 의상, 무대미술, 포스터 담당, 이 오페라는 워커 아트 센터 오페라단 Walker Art Center Opera Company을 위해 작곡됨 |
1968 |
콜로라도 아스펜 현대미술 센터 Center of Contemporary Art, Aspen 입주작가 |
1970 |
펜실바니아 랭카스터 소재 프랭클린 먀살 대학 Frankln and Marshall College에서 명예미술학 박사학위 수여 뉴욕에서 사랑시집 “삼각연애” Trilove 출간 |
1971 |
존 허스자가 제작한 기록영화 “인디애나의 초상” Indiana Portrait에서 LOVE 조각, 인생 등이 특집으로 다루어짐?10점의 실크스크린 작품집 출간 |
1973 |
미우정성 의뢰로 액면가 8센트 ‘특별한 사람을 위한 특별한’ special stamp for someone special 우표 디자인 인디애나주 문화생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인디애나 예술상 수상 |
1974 |
스미스소니안 박물관 의뢰로 워싱턴 허숀 박물관 Hirshhorn Museum 및 조각공원 개관기념 포스터, 판화 제작 |
1975 |
윌리엄 카츠와 공동으로 7점의 실크스크린 판화집 “다각형” Polygons 출간 |
1976 |
뉴멕시코주 산타페 오페라단 Santa Fe Opera Company의 의뢰로 미 건국 200주년과 오페라단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오페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 The Mother of Us All의 의상디자인과 무대감독 담당, 이 공연은 국립예술기금 |
1977 |
블루밍턴 인디애나 대학에서 명예 미술학박사 학위 수여 |
1978 |
뉴욕을 떠나 메인주 바이날하벤 섬에 정착. 수년을 이 곳의 하계거주지와 작업실에서 보냄 |
1980 |
10점의 실크스크린 판화집 출간 |
1981 |
메인주 워터빌 콜비 대학 Colby College에서 명예 박사학위 수여 |
1982 |
락랜드 판스워스 미술관 The Farnsworth Museum of Rockland 10주년 회고전 개최. 회화와 조각작품 전시, 이 전시는 콜비 대학 미술관 Colby College Museum of Art에서 “인디애나의 인디애나” Indiana’s Indiana라는 주제로 계속됨 |
1984 |
워싱턴 국립미국미술관 National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목공작업”전 Wood Work 개최, 포틀랜드 미술관 ?Portland Museum of Art에서 재전시 |
1987 |
일본 도쿄 오다쿠 갤러리 “미국의 팝아트 ? 영국”전 Pop Art USA ? UK 출품 |
1990 |
1972년 이후 뉴욕에서 최초로 회화 개인전 개최 |
1991 |
모나코 몬테 카를로 3회 조각 비엔날레에 12피트 다채색 LOVE 조각 출품 |
1993 |
네 번째 LOVE 기념조각 신쥬쿠 공공미술 프로젝트 Shinjuku-I-Land Public Art Project에 출품 |
1995 |
마슨 하틀리 군대화 Military Paintings와 함께 2인전 개최 |
2000 |
어머니를 회상하며 “여덟 가지 미국인의 꿈” The Eight American Dream 제작 |
2002 |
뉴욕 6번가에 기념비조각 LOVE 설치 |
2003 |
뉴욕 파크 애비뉴 Park Avenue에 “영을 통한 하나” One through Zero 숫자조각 설치 |
2004 |
폴 카스민 갤러리 Paul Kasmin Gallery “15점의 평화 그림”전 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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