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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News

꿈의 베니스 비엔날레

by @artnstory 200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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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특집 유럽 대공습
2007년 여름, 유럽의 미술계는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뜨겁다.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뮌스터조각프로젝트와 5년 만에 열리는 카셀도큐멘타, 100년 전통의 베니스비엔날레가 6월을 시작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대형 국제 전시뿐만이 아니다. 스위스가 세계 제일로 자랑하는 바젤아트페어 그리고 리스테(Liste), 볼타쇼(Volta Show), 스코프-바젤(Scope-Basel) 등 신생 아트페어까지 열린다. 지금 유럽은 가히 세계미술계 ‘별들의 축제판’이라 불러도 좋다. art in culture와 자매지 art INASIA는 이처럼 ‘완전 소중(일명 완소)’한 유럽 전시를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하기 위해 6명의 스탭들로 유럽특별취재단을 조직했다. 올 여름, 유럽 ‘미술 전쟁’의 전화(戰火) 속으로 한국미술이 돌진한다. 유럽 전역에서 한국작가들의 각종 전시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위세가 융단폭격에 비유할 일이다. 6개국 주요 도시에서 120명의 작가가 펼치는 ‘유럽 대공습’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미술의 중심에서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한국미술의 문화전쟁. 동시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한국미술의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자리다.


[동아일보]

《10일 개막한 베니스 비엔날레(52회)가 ‘조용한 도발’을 시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동안 실험작들의 ‘난장’이 펼쳐졌던 무대로 전위적이고 충격적인 시도를 우대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실험과 정통의 조화’로, 머리의 아이디어와 손에 밴 감성의 화해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개념 미술의 질주에 대한 ‘숨 고르기’이자 “이 자체가 소리 없는 도발이 아니겠느냐”는 평도 나온다.》

○ 세대 아우르는 미술가치 일깨워

아르세날레의 본(本)전시와 자르디니의 국가관 등에 77개국 2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11월 21일까지 열린다. 한국은 본전시 참여 없이, 이형구 씨가 한국관 작가로만 참여했다.

미국인 출신으론 최초의 총감독 로버트 스토가 내세운 주제는 ‘감성으로 생각하기, 정신으로 느끼기’. ‘감성과 정신의 화해’라는 주제는 그가 직접 구성한 ‘이탈리아관’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40여 명의 작가를 선보이면서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대가와 중견 작가를 대비시켜 세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가치를 일깨우려고 했다. 비엔날레에서 홀대받았던 로버트 라이먼 등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작품이 이채를 띠기도 했으나, 검증된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본전시에서 ‘정통’ 사진 작품이 많은 점도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 50여 명의 참여작가 중 사진을 내놓은 이는 20여 명. 미술의 주류로 부상한 사진에서 파격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지만, 베니스에서는 흔들림 없는 기록이나 고발 등 사진의 본령을 강조하는 작품이 많았다. 프랑스 작가 이토 바라다의 ‘퍼블릭 파크’나 얀 흐리스티안 브라운(네덜란드)의 ‘뉴욕 앤드 디 어더 월드’ 등은 ‘평범해서 더 특별하다’는 인상을 준다.

개념 미술에 밀렸던 ‘손의 가치’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품도 주목받았다. 가나의 엘 아나추이는 병뚜껑과 철사로 만든 거대한 장막 ‘두사사 2’로, 이탈리아의 안젤로 필로메노는 회화 같은 대형 자수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킴 존스는 전시 벽면에 세밀하고 촘촘히 선을 그려 냈다.

올해는 ‘몸의 해체’를 시도한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는 평을 들었다. 황금사자상 후보로 언급되는 독일의 이자 겐스켄은 ‘오일’을 통해 숨이 막 멎는 순간의 표정, 칼을 든 채 목이 찢어진 사람의 단말마를 표현해 “파워가 넘친다”는 평을 받았다.

○ “몸의 해체 시도한 작품들 충격적”

트레이시 에민(영국)은 ‘바로드 라이트(Borrowed light)’라는 제목으로 하체를 심하게 비튼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내 여성적인 측면인데, 예쁘기도 하지만 하드코어 같다”고 설명했다. 몸에서 성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전면 제거한 이레나 유초바(슬로바키아)의 인공피부 연작, 발가락의 수술 장면을 보여 준 토머 가니허(이스라엘)의 ‘호스피털 파티’도 유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

비엔날레 특유의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프란시스 알리스(벨기에)의 비디오 ‘리허설의 정치학’에서는 피아노와 성악 공연무대에서 전라의 여성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역사는 되풀이되고 간혹 길을 잃는다”는 메시지 등이 나온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곳에서 축구를 하는 파올로 카네바리(이탈리아)의 영상 등도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

인터랙티브를 시도한 작품은 ‘놀이마당’이 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야코브 달그렌은 900여 개의 다트판을 벽에 붙여 놓고 관객에게 다트를 던지게 했다. 그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유사하며 액션의 주체가 작가에서 관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중국 차오페이의 ‘에브리 미러클스’는 대형 천막 안에서 관객들이 직접 ‘세컨드 라이프’(가상현실)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 정치-사회적 메시지는 여전

‘체크리스트 르완다 팝’은 40여 명의 작가를 통해 아프리카 현대 미술을 한눈에 보여 주는 특별전으로 주목된다. 신디카 도코로 재단의 컬렉션전인데 왜곡된 여성의 몸을 보여 주는 영상(미네트 배리·에일리언) 등으로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무너뜨린다.

베네치아=허엽 기자 heo@donga.com

▼ 볼만한 장외 전시▼

빌 비올라 ‘해변 없는 바다’, 이우환 ‘조응’ 시리즈 눈길

비엔날레 기간 중 베네치아 곳곳에서 ‘장외 전시’도 활발하게 열린다.

이 중 가장 주목받은 장외 작품은 백남준 이후 최고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빌 비올라의 ‘해변 없는 바다’. 7일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조그만 가족성당 내 3개의 벽면에 설치한 대형 영상물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의 장막을 서서히 뚫고 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을 담았다. 물의 장막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벽처럼 보이면서 그것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1000가지’ 침묵과 표정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처럼 뇌리에 각인된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기획했으며 한국의 국제갤러리가 해외 화랑과 수억 원의 제작비를 공동 투자했다.

유럽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이우환 씨도 8일 개인전을 열어 설치조각과 ‘조응’ 시리즈를 선보였다. 베네치아 트론체토에서는 제1회 코르니체 아트페어가 10일까지 열렸다. 이 아트페어에는 50여 개 화랑에서 작가 150여 명이 출품했으며 한국의 백송화랑이 고진규 씨 등 3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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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현대미술의 최첨단을 소개한다는 베니스 비엔날레 원래 취지는 빛이 바래고 정치적 색채만 짙어졌다."

제52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평이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아르세날레의 본전시와 자르디니의 국가관 전시가 언론에 하나 둘씩 공개되자 국내 미술계 인사들은 대체로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최초로 미국인이 총감독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는 시각도 있다. 예일대 교수이자 유명한 미술평론가 겸 큐레이터인 로버트 스토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해 과거의 미술이 현재의 미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루이즈 부르주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솔 르윗, 지그마르 폴케 등 생존 원로거장들의 초, 중년기 작품이 이탈리아관 일대에서 대규모로 전시됐다.

비엔날레 원래 취지에 맞게 본전시나 국가관 전시 모두 젊은 작가 비중이 여전히 높았으나 극단적으로 실험정신이 강조된 작품보다는 이미 상당히 정제된 작품이 대다수였다는 지적이 많다.

파격적인 영상이나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설치로 시장터처럼 관객몰이를 하는 이색 작품은 눈에 띄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아트페어장에 내놓아도 금방 주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한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또 총감독이 공약한 대로 신설되거나 보강된 아프리카관과 터키관, 레바논관 등은 일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앙골라, 르완다 등 정치ㆍ경제적 곤궁에 처한 제3세계 미술을 소개하면서 "지금 아프리카에서 왜 미술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을 이끌어내고자 한 아프리카관은 참신하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런 기획은 이번 비엔날레에 정치적 색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시아 작가로는 중국과 일본, 인도만 포함됐고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 작가는 본전시에 끼지 못해 이 역시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안미희 광주비엔날레 전시탐장은 "상당히 정치적인 비엔날레"라며 "남미와 아프리카 등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지역의 미술을 보게 돼 흥미롭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험정신의 퇴색과 정치색 강화는 국가관 전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소피 칼을 내세운 프랑스 관이나 트레이시 에민을 내세운 영국관 등도 모두 인기를 끌었지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내는 전시는 아니었다.

일본관은 히로시마 원폭 지역의 돌 등을 탁본처럼 떠내는 작업을 한 오카베 마사오를 내세워 미묘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인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이번 국가관 전시를 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국가관 전시가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는 실감이 든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각국마다 너무나 뻔한 주제, 뻔한 작가들을 자신감 있게 내세우면서 그들 작품의 메시지와 개념을 밀고 나가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국관 전시에 대해서는 "전시장이 워낙 규모가 작고 외진 곳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어느 정도 시각적인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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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문화전쟁이었다.” 10일 개막한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행사장을 찾은 미술계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앞서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7일 사전개막 전시관 입구에는 국가관별로 관람객의 숫자가 큰 차이를 보였다. 일부 국가관은 장사진을 이룬 데 반해 그렇지 못한 국가관이 많았다.

한국관 옆에 위치한 독일 국가관은 기다리는 행렬이 20∼30m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30∼4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다. 전시관 앞에 늘어선 행렬의 길이가 바로 그 국가의 문화적 인지도를 말해주는 듯했다.

프랑스와 영국관도 사정은 비슷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국가관은 최근 세계미술시장에서 급부상하는 러시아 중국 인도관이다. 막대한 석유자금으로 미술시장이 급성장하는 러시아관은 전시장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도와 중국은 스케일로 승부를 걸어 눈길을 끌었다. 주최국인 이탈리아는 두 개의 국가관을 운영하고 있다. 자르디니공원에 위치한 국가관은 본전시 성격의 국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는 아프리카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전시장 중심에 위치한 데다 행사 프로그램 역시 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제3세계 국가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베니스비엔날레는 사실상 아프리카 미술시장의 유럽 편입을 보여주는 듯했다.

관람객 유치를 위한 국가별 경쟁도 뜨겁다. 티셔츠를 비롯한 각종 기념품과 홍보자료를 나눠 주며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나라별 경쟁이 치열했다. 어떤 국가관은 음료수까지 무료로 제공한다. 기업들의 산업박람회를 방불케 한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성공요인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국가 간 경쟁을 유도하는 독특한 전시관 운영시스템이다. 각 국가는 그들의 국가 전시관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김정헌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은 “국가관 커미셔너 제도가 국가관리를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형식상 독립적인 개인 창작활동이 치열한 국가 간 문화전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설치조각가 이형구씨의 개인전 성격으로 운영되는 한국관도 사정은 비슷하다. 우리나라 대표선수라는 차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

행사장 뒤편에 마련된 한국관은 위치 조건이 열악해 관람객 유치에 있어서 늘 손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관을 들른 영국에서 온 아트스폰서 안토니 포셋씨는 “이형구의 작품이 ‘가상의 실제놀이’를 보는 것 같아 즐겁다”고 높은 관심을 보였다. 구겐하임 측에선 벌써부터 이형구 작품 구매의사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형구 작품은 ‘톰과 제리’라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3차원 공간에 실재하는 것처럼 구현해 가상과 실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 쇼케이스엔 그 뼈대를 전시해 박물관처럼 전시하는 등 사람들로 하여금 톰과 제리가 실제 존재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사이비 고고학의 재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일부에선 이씨의 스토리텔링이 너무 사변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미술가도 문화전사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는 항변이 더 설득력을 얻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