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비디오 광시곡 kbsnamjunepaik.com
2007년 7월 27일 ~ 12월 30일
KBS 신관 특별전시장
다다익선 1988, 1003 대의 모니터와 철 구조물로 된 3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유성: 높이 약18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88년 올림픽게임과 다다익선 타워 개막기념으로 설치
동시 변조를 위한 스케치. 솔로몬R . 구겐하임미술관,1999컬러사진 위에 아크릴릭. 61 x 50.8cm.
"백남준의 세계"2000, 7.21~10.29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이 전시는 공간을 뒤엎은 화려한 레이져쇼와 비디오 아트로 흥분 그 자체였다.
뉴욕 구겐하임에서 열린 회고전을 그대로 가져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했고 멋졌다.
'백남준과 그의 아방가르드 친구들' 세미나까지 흥미로웠다. 백남준 선생님의 당당한 풍채와 모습, 제스츄어와 패션, 말투까지 기억에 남는다. 후에, 뉴욕 소호거리에서 그의 부인이 휠체어를 밀고 건강하지 못한 백남준 선생님을 보며 눈물이나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2006년 1월 29일 큰 별이 떨어졌다...
이미지 출처 http://www.paikstudios.co.kr
1932년 6월 20일
한국 서울 출생, 섬유업체 거부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남.
1950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가족이 홍콩으로 피난, 훗날 일본으로 건너감.
1956
일본 동경대학에서 미술사학과 음악사 전공. 졸업논문으로 '아놀드 쇤베르그 연구'를 씀.
1956-58
뮌헨대학에서 음악사를 전공하고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을 만남. 프라이부르그 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함.
1958-63
존 케이지 만남; 쾰른의 서독방송국 (WDR)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작업 시작.
1959-62
행동음악을 연주하기 시작. 쾰른에서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괴짜들 (Die Originale)”을 공연.
1963
플럭시스 운동 참여.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TV 모니터를 사용한 전시회를 개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Exposition of Musik / Electronic Television)”
1963-64
일본으로 감. 슈야 아베를 만남. 컬러 텔레비전과 전자자석을 이용한 실험. 뉴욕에서 샬롯 무어맨과 공연함.
1965
뉴욕의 갤러리아 보니노에서 첫 개인전,”전자 예술 (Electronic Art )”을 가짐. 첫 캠코더 구입.
1966-69
첫 번째 멀티 모니터 작품 설치, 전자기적으로 왜곡된 텔레비전 녹화방식을 사용함. "전자 오페라 No.1 (Electronic Opera No. 1)"는 보스턴의 GBH-TV의 라이브 프로그램인 “ 대중매체는 대중매체이다.”에 방영됨.
1969-70
수야 아베와 비디오 신디사이저 개발.
1971
뉴욕 WNET의 TV 랩에서 일함.
1976
쾰른의 Kolnischer Kunstverein 에서 회고전 개최.
1979부터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
1982
뉴욕 휘트니 박물관에서 회고전
1984년 1월 1일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 (Good Morning Mr. Orwell)"를 빠리의 폼피듀 센터와 뉴욕 WNET-TV 스튜디오를 통해 위성 생중계.
1987
베를린의 컨스트 아카데미의 회원이 됨.
1988
서울 올림픽 게임을 위해 1003개의 모니터를 쌓아 만든 미디어 타워 “다다익선 (The more the better)”을 작업함.
1990
필라델피아에 공공 장소 조각품인 "비디오 항구 (Video Arbor)"를 세움.
1991-92
작품 "비디오 시간-비디오 공간 (Video Time - Video Space)"의 스위스 바젤과 취리히에서의 전시회, 후에 뒤셀도르프와 비엔나에서 전시회 개최.
Goslar Kaiserringes Award 수상.
1998
Kyoto Award 수상
2000
National Arts Club Award 수상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회고전 ‘백남준의 세계’ 개최. 이후 서울의 호암 갤러리와 로댕 갤러리로 옮김.
2006
2006년, 1월 29일
Essay
존 핸하르트 구겐하임미술관
백남준의 작품세계는 그의 삶과 예술의 거울이며, 찬사이다. 세계적인 거장 백남준은 비디오, TV 아트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시아, 유럽, 미국을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 속에서 우리는 그의 예술 세계를 이끌어 온 창의성과 마주하게 된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작품으로 고스란히 녹여낸 백남준의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작곡과 행위 예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의 젊은 시절은 훗날 다양하고 풍부한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의 일상 생활에서 전자 영상과 대중매체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백남준의 신선한 등장은 매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예고했으며, 그 후 20 세기 후반 대중 매체 문화에 지속적이고 원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영향력은 텔레비전 문화를 재해석하고, 비디오 아트를 예술 장르로 편입시키기에 이른다.
오랫동안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매료되었던 나는 1982년 뉴욕의 휘트니 박물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개최했다. 그 후 백남준은 꾸준히 아트스트로서의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성공을 일궈냈다. 현대 문화에서 비디오 아트가 크게 자리잡은 것은 백남준의 예술과 놀라운 상상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이용한 프로젝트, 설치 미술, 행위 예술, 공동 제작, 새로운 예술 도구 개발,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중 매체 문화 형성에 큰 기여를 했으며,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언어를 재해석한 선구자적 존재이다.
백남준은 정치적으로 반예술 운동이 한창이었던 1950, 60, 70년대부터 예술 활동을 시작하였다. 사회적, 문화적 변화의 시기에서 표현에 대한 욕구와 행위 예술의 개념적 의미를 기술적 영상과 접목시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는 아방가르드 독립영화 제작 당시 영화와 비디오를 유연하고 역동적인 멀티예술 형태로 승화시켜 영화 영상에 혁신을 가져왔다. 또한 텔레비전과 단독 채널 비디오를 조각이나 설치 예술과 같은 형태로 전시하여 동영상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었다. 비디오와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전자 영상 예술을 현대 예술의 주류로 편입시킨 그의 독보적인 역할은 대중매체 예술의 역사에 한 획을 긋기에 충분하다.
지난 20 세기에 동영상은 녹화가 가능한 사실적인 기술을 통해 구상주의적, 추상적 이미지를 재현해냄으로써, 다양한 매체와 연계하는 힘있는 도구가 되었다. 움직이는 일시적인 이미지의 개념은 아티스트들의 이미지 생성의 새로운 전략과 형태를 구성하는데 구심점의 역할을 하였으며,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비주얼 문화의 중심에 놓는 역사 문헌 모델과 이론적 해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백남준은 최근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예술이라는 낯설지만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였다. “비디오 아트 그 후”라는 설치작을 통해 다시 한번 역동적 이미지 형성에 힘쓴 그는, 무대에 설치한 스크린이나 인공 폭포수, 연기로 채워진 조각품에 레이저 빔을 쏘는 형태의 새로운 예술을 선보였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영화와 비디오를 전자, 디지털 매체와 혼합하여 새로운 이미지 기술과 표현의 형태로 녹여내었다. 그리고 기존의 비디오, 텔레비전 시대의 막을 내림으로써 시각 예술의 전환을 선언하였다.
본 카다로그의 첫째 장 “서울 플럭시스”는 한국 태생으로, 작곡과 행위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백남준의 과거를 조명한다. “영화적 아방가르드”에서는 6, 70년대 백남준의 독립영화 제작 활동을 다루었으며, 뉴욕 거주 당시 그가 다양한 예술적 환경에 노출되었다는 점과, 60년대 중반에 이미 비디오를 통한 전자 영상 해석의 서두를 열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행위 예술과 영화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제도적 개념에 변혁을 가져왔다. “백남준의 승리”는 전자 영상의 표현력과 구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의 신화적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 백남준은 비디오 이미지를 다양한 형태로 구성함으로써, 조각의 형태와 설치 미술에 신선함을 가져왔다. 전자 기술에 대한 깊은 조우를 갖고 텔레비전의 개념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재해석한 그는 비디오 예술의 판도에 큰 변형을 불러일으킨다. 백남준의 작품 세계는 비디오 기술이나 텔레비전의 시스템에 의해 구속 받거나 제한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자 이미지의 형태와 구성, 그리고 전자 이미지가 공간과 텔레비전에서 갖는 위치를 변형시키고 결국 창의적 표현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는 뛰어난 직관력으로 영상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알아보았으며 영상을 십분 활용하고 더 나아가 변형시키기에 이르렀다. 백남준은 Shuya Abe, Norman Ballard, Horst Bauman과 같은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전자 이미지를 구현하는 새로운 도구를 계발했으며, 첨단 컴퓨터, 디지털 기술을 그의 예술작품과 접목시켜 작품 콘텐츠와 시각적 이미지와 조형 형태를 계속 발전시켜나갔다.
본 카다로그는 일련의 탐구적 관찰을 제공한다. 백남준의 작가 세계와 작품들을 여러 개의 주요 개념으로 나누어 제시하며 이는 백남준이 이룩한 심미적 성격의 작품들의 심오한 깊이를 독자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고자 함이다. 또한 카다로그 곳곳에 백남준의 글을 개재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카다로그의 디자인을 맡은 J. Abbott Millot이 백남준의 예술과 생애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제공한 것은 구겐하임 박물관의 설계가 Frank Lloyd Wright의 근대주의적 설계가 백남준의 작품 감상과 관객 참여에 새로운 기준을 제공하는 것과 그 맥락이 같다. 특별 제작된 그의 두 개의 레이저 프로젝션 작품은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의 로툰다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레이저 광선이 박물관 채광창을 향해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광선을 내뿜고, 다른 하나의 작품은 천정에서 홀 아래로 덜어지는 폭포수에 레이저 광선이 투사되어 역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구겐하임 박물관의 독특한 나선형 구도의 복도 덕분에 백남준의 설치작은 다양한 각도에서 그 모습을 달리하며 방문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두 개의 레이저 프로젝션은 예술과 기술의 역동적인 결합을 상징하며 이것이야말로 백남준의 작품세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구겐하임의 1층 라운지에는 백남준이 설치한 100여개 TV 모니터에서 다양한 채널이 동적인 이미지를 자아내고 있다. 또한 박물관 벽에 매달아 놓은 거대한 스크린은 모니터에서 내뿜는 이미지와 천정의 채광창에 비치는 레이저 프로젝션을 감각적으로 연결시킨다.
구겐하임의 나선형 복도에도 백남준의 독창적인 비디오 설치예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대규모 작품인 TV 정원 TV Garden (1974), 달은 가장 오래된 TV이다 Moon Is the Oldest TV (1965), 비디오 물고기 Video Fish (1975) 등은 구겐하임의 독특한 구조에 맞게 백남준이 직접 형태를 수정하였다. 소규모의 비디오 조각작품인 TV 의자 TV Chair (1968), 진짜 물고기/ 살아있는 물고기 Real Fish/Live Fish (1982), 비디오 부처 Video Buddha (1976), 스위스 시계 Swiss Clock (1988), 촛불 TV Candle TV (1975), TV 왕관 TV Crown (1965), 로봇 가족 Family of Robot (1968) 도 전시되었다. 타워에 위치한 갤러리는 복원되거나 다시 부각되고 있는 그의 5, 60년대 작품을 집중 조명할 것이다. 초기의 쌍방향 비디오 설치물에는 TV 자석 Magnet TV (1965), 참여 TV Participation TV (1963), 발로 켜는 TV Footswitch TV (1988) 이 있다. 또한 기존 설치작들을 비디오 테잎과 사진으로 엮은 작품인 백-아베 비디오 합성기 Paik-Abe Video Synthesizer (1969)이 전시된다. 그리고 백남준의 예술 활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플럭서스 퍼포먼스 비디오테이프, 오브제, 악보, 포스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Charlotte Moorman의 전설적인 연주를 담은 사진 및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백남준의 작품인 ‘TV 첼로를 켜고 있는 Charlotte Moorman ‘ Charlotte Moorman with her TV Cello (1971)이 전시된다.
갤러리와 인접한 단독채널 상영실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테이프와 최근 복원된 DavidAtwood와의 1969년 9월 23일 실험 (1969), 굿모닝 Orwell (1984), 살아있는 극장과 함께 살다 (1989) 등을 포함하여 범지구적인 텔레비전 방송을 실현하기 위한 협동작업의 핵심적인 작품들이 상영되고 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Electronic Arts Intermix 사의 Stephen Vitiello는 백남준의 개인 소장 비디오들을 직접 검토하였다. 그리고 Vidipax와 함께 그 동안 대중 사이에서 잊혀졌던 수개의 비디오와 오디오 테이프가 빛을 발하도록 하였다. 갤러리 High는 백남준이 최근 Norman Ballard과 공동 작업한 레이저 조각을 전시할 예정이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세 개의 레이저 작품은 움직이는 빛의 공간을 재현해 낸다.
본 서론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진으로 1973년 작 TV 의자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 A New Design for TV Chair을 선택했다. 여기서 백남준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미래의 시청자를 그린 1940년대 대중 과학잡지 이미지를 차용했다. 텔레비전은 당시 이미 광고를 전달하는 독점 산업이자, 정보의 일방 통행로에 기반해 작동하는 “커뮤니케이션”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백남준은 ‘TV 의자를 위한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미래의 텔레비전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물음을 던졌다.
당신은 아는가?
얼마나 빨리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TV 의자를 볼 수 있을지를?
얼마나 빨리 미술가들이 그들만의 TV 채널을 갖게 될지를?
얼마나 빨리 비디오 아트를 위한 벽면 TV가 대부분의 가정에 설치될지를?
백남준은 모든 이들에게 자유롭게 열려있는 ‘전자 고속도로’이자 미술가들의 표현을 위한 “글로벌 그루브 (범지구적인 한판 놀이)”라는 전혀 다른 텔레비전을 상상했다. 백남준이 발전시킨 비디오의 다양한 형태는 세계 각지의 개개인과 지역 사회의 상상력과 참여가 반영되는 열린 대중 매체를 향한 그의 바람을 잘 담고 있다. 대안공간과 텔레비전을 위한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개인 아티스트나 여러 집단과 공동 작업을 해온 그는, 특히 몇몇 방송사에 의해 독점되다시피 해 온, 대중매체와 사업장으로서의 텔레비전의 개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본 서론을 1982년 미국 휘트니 박물관 앞에서 있었던 백남준의 작품 ‘로봇 K-456 (1964) 의 사고 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마무리 할까 한다. 백남준은 휘트니 박물관에서 그의 회고전을 열었던 당시 원격조종 로봇을 전시장에서 가지고 나와 Madison가 보도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로봇을 조종하여 길을 건너게 한 뒤 얼마 안 있어 지나가던 차에 치였고 결국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는 ‘ 20세기 기술의 재앙’을 표현하기 위해 사고를 냈으며, 일시적인 기술 진보에 인간이 대항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교훈을 던지고자 하였다고 했다. 그의 이벤트는 인류는 물론 그들이 개발한 기술 자체의 취약성을 고발하였다. 텔레비전을 위한 거리 퍼포먼스는 그가 최초로 텔레비전 수상기로 실험을 한지 20년이 흐른 뒤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로봇 사고가 있은 후 TV 뉴스 기자들이 몰려와 이를 취재해갔다. 그는 다소 장난기 어린 사건을 통해 인간이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고, 기술에 오히려 통제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같은 인조 로봇 이벤트는 지배적인 후기제도사회를 전복시키는 기술력의 인간적인 표현이다. 텔레비전을 미술가의 도구로 변형시킨 백남준은 우리에게 1960년대의 아방가르드 운동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테크놀로지로부터 대안적인 표현 형태를 창조해야 한다는 아방가르드의 개념적 토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였다. 로본 K-456은 해방의 선언으로서 혁신의 잠재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잃어서는 안되며 미술가들은 이를 끊임없이 새롭게 상상하고 새로이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새로운 세대의 미술가들에게 백남준과 20세기 말의 미술이 갖는 긴밀한 관계뿐 아니라 확장되고 있는 미디어 문화의 미래에 미친 그의 영향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끝없이 변화하는 그의 이미지들은 지나간 역사에 대한 기억일 뿐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들을 새롭게 해방시키기 위한 투쟁의 강력한 표본인 것이다.
비디오 아트는 자연을 모방한다. 그 외형이나 질량이 아니라 그 내밀한 “시간-구조”, 즉 노화의 과정 (돌이킬 수 없는 것)을, Norbert Wiener는 레이더 시스템 (시간을 포함한 양방향의 극소 분석) 디자인에서 (돌이킬 수 있는) 뉴튼적 시간과 (돌이킬 수 없는) 베르그송적 시간에 대한 심오한 사색을 했다. Edmund Husserl은 “내적인 시간의 식의 현상학” (1928)에 대한 강연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안다…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고 말했던 중세 최고의 음악 미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했다. 이 역설의 20세기적 변형은 사르트르의 역설로 이어진다. “나는 항상 내가 아니며, 나는 항상 내가 아닌 어떤 것이다.” - 백남준,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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