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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빌리지 벽화: 낙서화 역사속의 쟝 미셸 바스키아와 키이스 해어링
뉴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낙서화이다. 낙서화는 시작부터 미술계 내-외부에서 논란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으로 크게 양분되어있다. 70년 초, 낙서화에 대한 열기가 퍼져나갔고 지하철역의 벽면을 비롯해 열차의 외부, 고가도로 교각, 주택가나 공장지대의 각 벽면 등 사람들의 시선에 잘 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낙서화가 그려져 있었다. 낙서화를 좁게는 낙서 Graffiti라 칭하지만 넓게는 문화파괴행위 Vandalism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지하철 낙서의 시작은 71년에 등장한 ‘Taki 183'으로 알려져 있다. 뉴욕타임즈가 추적한 주인공은 드미트리우스라는 17세의 청년으로 밝혀졌고, 타키란 그 젊은이의 그리스식 애칭이며 183은 그가 거주하는 집의 주소였다. 그의 직업은 뉴욕시 일대를 지하철로 돌아다니며 물건이나 서류 등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면서 마커로 꼭 같은 사인을 하고 다녔다. 그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나자 비슷한 행위가 뉴욕시 전역에 번졌고 낙서 방식도 다양해져 스프레이캔이 등장하고 마침내는 전문 집단이 생겼다. 결국 낙서가 뉴욕의 명물이 되었고, 이어 또 유럽 각국으로 번졌다. 1973년에는 주간잡지<뉴욕>에서 ‘Taki’상을 만들어 spin이라는 낙서를 최고 디자인으로 선정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럴 즈음, 미술평론가들이 낙서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회학자들도 이 현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백인 주도의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 민족계층이 낙서를 통해 자기 삶을 확인하고 자기존재를 밖으로 드러내며 미국에서 받는 부당한 대우와 소외의 반영으로 파악된다. 전철 벽면에 재빨리 그리고 도망가던 그들이 이제 정식으로 화랑이나 미술관에서 초대전시회를 갖는 작가가 된 것이다. 그러한 영웅들 중 한 사람이 88년 마약과다로 27살에 요절한 쟝 미셸 바스키아이다.
이스트 빌리지 낙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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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뉴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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