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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 22일 자신을 SAMO(같은 늙은 바보same old shit) 라고 부르던 바스키아는 당시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을 숭배하며 15살 나이에 화가가 되리라 결심하고 가출하였다. 바스키아와 워홀은 60년대의 노장의 백인스타와 80년대 초의 ‘15분의 기적’을 이룬 젊은 흑인 작가의 관계이다. 그들은 모두 미국이민 일세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다는 공통점 뿐, 여러모로 상반된다. 사고적인 면과 인간적인 감성의 잔재를 없애려 노력한 원초적인 극치의 개념주의 작가 앤디워홀은 기계적 반복성과 고정성의 원칙을 표현했으며,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미숙한 화법의 후기 낙서주의 화가 바스키아는 그 자신의 손과 붓의 세련된 설익음을 신뢰하며 작품에 몰두했다.

바스키아의 회화는 너무나 격렬하고 직설적이다. 그의 작품은 또한 극도의 폭력이 예술의 일부가 된 순간들을 포착하였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잘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도시의 생기있고 즉각적인 색채로서, 무관심을 말하고 외치는 형태와 문자들을 보완하면서 기호들을 한데 모은다. 정체성을 찾으려는 필사적인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형상, 후에는 토템형태의 인물이 그를 대신한다. 바스키아는 이 시대를 폭로하는 정복의 미술로 홀로 수행했다. 그는 현대생활의 위험성을 비난했다. 돈, 마약, 섹스, 인종주의. 시대의 무질서와 혼돈의 증거를 되살려주는 파괴의 이미지를 상상해냈다. 바스키아는 해골, 뼈 등 죽음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죽음을 무모하게 동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작품주제를 시각적, 언어적 회합의 뭉텅이로 맥락화시키고 부연시켜 해석했다. 주제의 일반적 범주는 자전적 이야기, 흑인영웅(Hank Aaron), 만화책, 해부학(그레이 해부학, 레오나르도다빈치), 낙서(사이 톰블리)와 관련된 기호 및 상징, 표식(자신의 시각어휘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공급원으로 헨리 드레이퓌스 상징 자료책-그래픽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와 상업미술가들이 이용하는 국제적 기호와 상징을 모아놓은 책) 뿐 아니라 금전적 가치, 인종주의(미국 인디언), 그에게 있어 명성이란 이름 모를 흑인 선수이거나 흑인 재즈 음악가, 빈 왕관 같은 것이었다. 왕관은 그가 자신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 수여하는 존경과 찬미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바스키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인종정치는 1980년대 초기 낙서화의 뿌리였다. 이러한 주제들은 영어, 스페인어, 불어, 독어, 이태리어를 포함한 여러 다른 언어들, 그리고 회화, 드로잉, 꼴라쥬, 실크스크린, 조각과 같이 바스키아가 이용했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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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더 많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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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 & 쟝미셸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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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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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워홀의 "꽃"

앤디워홀 더 많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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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미셸 바스키아 & 키이스 해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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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그룹 '콜랩'이 기획한 초대형 그룹전 <타임스 스퀘어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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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스 해어링은 1958년 펜실베니아에서 출생하여 1990년 뉴욕에서 AIDS로 사망하였다. 그는 정식미술교육을 받은 낙서화가로 개념미술수업을 들으며 비디오, 의미론, 길거리에서 행해지는 미술행위 등에 관심을 키운다. 그는 개인적인 기호, 기어다니는 아기, 짖는 개, TV set, 전화, 비행접시를 개발했으며, 그것은 고대의 신비와 고도기술 사회의 강박관념을 포착하면서 동굴미술과 풍자화의 영역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기술한 바 있다. 미술을 길거리로 내려오게 한 해어링의 또 다른 시도는 소호의 라파예뜨가에 pop-show 가게를 열어 그의 오리지날 작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키이스 해어링은 뉴욕에 와서 첫눈에 지하철 낙서에 반했다고 한다. 드로잉의 완숙함, 색채와 스케일, 대중적 이미지, 잡힐지 모르는 위험, 그리고 작가와 관객의 직접적인 관계 등이 그를 사로잡았다. 해어링의 예술이 대중문화와 대중매체 속으로 처음 보급된 것은 지하철 드로잉에서였다. 그는 사진작가를 동반하여 그로 하여금 작업과정과 작업 자체를 사진으로 남기게 하였다. 해어링의 빠른 속도는 잡히지 않기 위해서 빨리 그려야만 했기 때문에 더욱 속도가 붙은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선은 음악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데, 선이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속도는 실제 드로잉의 신속함과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같은 탄력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언어로는 할 수 없지만 이미지로는 가능한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간결하고 단순하게 사물을 나타내도록 노력하였다. 상당히 많은 정보가 단 하나의 선으로 전달될 수 있으며 그 선에서 생기는 작은 변화로도 완전히 다른 의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미지들은 또 다른 어휘로서 반복을 통해 보다 함축적이 되는 기호와 상징들이 되었고, 선 하나로도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내며,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 기호들이 창조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기어다니는 아기>는 하나의 기호가 되었다. 시인Rene Ricard는 그 이지를 ‘radiant child'라고 이름 지었는데, 그 언어상의 이미지는 시각적 이미지와 적절히 어울린다. 그 아기로부터 뻗어있는 선들은 마치 그 아기가 종교화에서 성스러운 인물인 것처럼 내부에서 타오르는 영적인 빛을 나타내고, 그 빛만이 풍자화의 시각적 단어로 표현된다. 'radiant child' 는 이상화된 자화상으로 희망과 가능성을 뜻하고, 새 삶이 가져오는 재활의 의미를 상징한다. 그 이미지는 1981년 당시 뉴욕커들 조차 믿게끔 한 단순하고 정직한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인간내부에 존재하며 성별, 인종과 정치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전 인류의 정신을 대표한다. 또 다른 달리는 이미지의 형상은 사실 개라기보다는 네 발 달린 동물이다. 그것은 동물,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상징으로 동물이 사람보다 더 클 때 그것은 자연 ?또는 육식 동물로 나타나지며 동물이 작을 때, 그것은 인간의 애완동물일 수 있다. 크기는 선이나 반복에 상당하는 도구가 된다. 크기는 때때로 사물들에게 다른 의미들을 부여하기 위해 조정된다. 그 외의 작품에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거대한 조각이 채색의 보충에 의해 밝고 빛나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그리고, 미국의 상징으로 팝아트의 대표적 이미지인 미키 마우스와 앤디워홀을 하나로 융합한 Andy Mouse 역시 ’radiant child‘ 이래로 이상화된 자화상이다. 해어링은 시각이미지에 대한 개념의 중요성을 이해했고, 그의 이미지를 fine art와 만화라는 pop art와 낙서화라는 folk art에서 발견한 것들과 함께 연결시켰다. 해어링은 ‘내가 한 것의 대부분은 우연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우연은 Louise Pasteur가 강조했듯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 마음상태에서 일어난다.  키이스 해어링 자료 더~ 

그리고, 21C에 그 계보를 잇는 뱅크시

Posted by @artnstory 아트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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