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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Painting&Prints

박현주展 / PARKHYUNJOO / 朴眩姝 / painting

by @artnstory 2008. 4. 15.

빛 너머_Beyond The Light
2008_0415 ▶ 2008_0502

갤러리 선컨템포러리
suncontempora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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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빛은 단번에 우리를 사물의 너머, 초현실의 문턱으로 안내한다. 그 빛은 돌출된 입방체와 강렬한 채색의 주변에 낮게, 그리고 조용히 자리하면서 그것들의 물성을 완화하고, 어떤 '사유적인' 차원을 매개한다. 그렇더라도, 이 빛은 예컨대 렘브란트의 천정을 뚫고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직사광선과는 다르며, 사물 또한 그 구제를 기다리는 융통성 없는 가련한 3차원인 것만도 아니다. 빛은 사물을 부드럽게 스치고, 사물은 빛의 작용을 매개한다. 여기서 빛이 진정으로 초월적일 수 있는 것은 그 빛이 사물에 의해 육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일정부분 사물화된 빛, 사물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각 단위 색면들의 구성들 또한 그 자체로서도 매력적인데, 그 매력은 빛의 개입에 의해 전혀 퇴색되거나 둔화되지 않는다. 물성은 후퇴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어떤 초현실의 기반이 된다. 사물은 빛의 동반자가 되고, 빛은 색의 수준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그의 동경대학 재학시절 그가 속했던 아틀리에에서 서구의 옛 거장들, 예컨대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상 등을 통해 빛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가능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 “성상의 모사실습거치면서… 나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회화에서의 빛의 효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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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끝에 그는 빛을 회화의 세계로 초대해 들이는 한 방식을 발견했는데, 바로 회화적 질서를 교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지지하는 것으로서 빛이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사광의 어른거림이 하나의 강렬한 원색을 에워싸도록 함으로써, 색과 빛이 동등한 차원으로 하나의 평면 위에 공존하도록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정술했듯, 여기서 ‘빛(光)은 사물의 표면에 반사되면서 그 사물의 색(色)으로 육화(incarnation)된다. 이 빛은 사물의 기억과 흔적에 의해 끊임없이 조율되는, 일종의 ’색 반사‘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는 예컨대 댄 플라빈(Dan Plabin) 같은 작가의 경우처럼 외부의 전기적 요인에 기대지 않으면서 빛을 색화할 수 있는 매우 시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 직육면체 상단면의 정교한 채색과 차분하고 부드럽게 그 주변을 감싸는 이 색과 빛의 공존과 조합, 반복에 의해 박현주의 것은 매우 복합적인 차원의 회화적 이마주로 귀결된다. 그 자체 안에 모더니즘 회화론의 도그마를 해독하는 기제로서 빛이라는 요인에 의해 새롭게 재활된 회화의 모습이랄까. 아니면, 자기 안에서 자기를 초월하는 요인에 의해 부단히 새로워지는 ‘빛의 회화’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빛은 회화적 범주 안에서 어느 정도 통제와 조정이 가능한 회화의 내부요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계몽주의적 의미의 순수회화와는 그 궤도가 전혀 다른, 새롭게 해석되고 감상되어져야 할 회화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작가가 그 빛을 일컬어 ‘생명의 빛’이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부드럽고 차분한 빛으로 인해 그 안에 자신을 능가하는 요인을 내포하도록 허용하는, 전혀 새로운 회화정신이 잉태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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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일관된 주제는 ‘빛’이다. 전통 템페라 기법과 금박을 사용하여 현대적으로 빛을 표현해 온 박현주는 회화의 시대별, 개념적 역사를 넘어 가장 기초가 되는 지지체인 캔버스의 원류를 차근차근 거친 작가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처음으로 빛을 매개로 한 소통을 시도하며, 또한 매체에서도 파격적인 변화가 있다. 2003년 ‘Inner Light’展이 빛을 차곡차곡 작품에 담아내는 작업이었다면, 본 전시 ’빛 너머(Beyond The Light)’ 展은 작품 안의 빛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빛을 매개로 한 소통을 유도한다. 박현주의 빛 ● 빛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기 같은 것이다. 그 만큼 빛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박현주에게도 빛을 재발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동경예대 회화 재료학 과정 때 프라안젤리코(이태리 르네상스의 승려이자 화가)의 성상화를 모사하면서 서구 전통 회화인 템페라화를 학습하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바탕작업이 서구 전통 금박기법이다. 이것은 동양에서 종이에 아교와 옻칠을 하여 금박을 얹는 것과 구별된다. 13, 14세기 초기 이태리 르네상스 시기에 보여지는 판넬화로, 주로 금박배경의 템페라 물감으로 그린 이콘화이다. 박현주는 지금도 그 당시 모사한 성상화를 작업실 한 벽에 걸어두고 그 당시의 빛에 대한 감흥을 되새기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러한 계기로 시작된 빛에 대한 모색은 템페라와 금박, 그리고 아크릴을 이용한 지지체에 따라 빛의 깊이도 달라지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상반된 지지체의 등장 ● 이전의 전시에서 ‘현대의 성상화’라 불리 울 만큼 박현주의 작품에서는 마치 시공간에 빛만이 존재하는 듯한 엄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새로운 지지체의 등장으로 무거움을 덜었다. 바로 메탈이다. 템페라 화의 바탕을 만들기 위한 작업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아교와 석고가루를 두껍게 입힌 흡수성 지지체 위에 점토를 반복해 바르고 금박을 입힌 후 문지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반면, 비 흡수성 지지체인 메탈은 채색기법 또한 보다 현대적으로 바뀌게 된다. 에어 브러쉬를 사용한 그라데이션은 그 동안 선보인 템페라의 색감에 비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금박은 빛이 쌓이면서 은은한 느낌을 주는 대신, 메탈은 빛을 순식간에 서로에게 반사시키고 흡수하면서 생동감을 더한다. 자유로운 빛의 행렬 ● 이번 신작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특징은 형태와 구성의 변화이다. 유기체의 원형인 원이 등장하고 계속되는 생성을 의미하는 복제된 형태를 선보인다. 큰 틀에 맞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작품이 전시공간에 ‘걸리다’라는 개념이 아닌, 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시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며 존재한다는 연출로 보여질 예정이다. 기존의 작품들이 강한 정신성을 나타냈다면 본 전시에서는 공간 내에 더해지는 생명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빛의 성질과 매우 유사하다. 빛은 태초부터 생성되어 끊임없이 움직이며 흡수되고, 반사된다. 그 이후에도 시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영원성을 가진다. 원형과 정사각형, 그리고 직사각형의 메탈의 집합 작품이 유기체처럼 부유하는 형태를 띠며, 빛이 반사되어 퍼지고 되돌아 오면서 이미지화되는 형형색색의 복제와 증식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빛과 박현주 그리고 관객 ● 그 동안 박현주의 작업은 자신과 빛을 일대일로 대면한 소통이었다면, 이번 전시에는 빛, 박현주 그리고 관객도 함께한다. 흡수성을 띠는 지지체인 금박이 빛을 머금는 것에 반해 비 흡수성의 지지체인 메탈은 빛을 주거니 받거니 자유로이 움직인다. 그 속도도 순식간이다. 박현주의 빛에 대한 모색은 보다 적극적이고 자유로워졌다. 앞으로 박현주는 메탈 작업과 템페라화를 이용한 작업을 병행할 예정이다. 전시구성은 1층, 2층, 지하층으로 구성이 된다. 지금까지의 박현주의 빛에 대한 탐구와 동시에 그 빛을 통한 소통을 아우르는 전시라 할 수 있다. ■ 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