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찌슨_꼼짝마!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07
MJ갤러리_MJ GALLERY
mjgallery.kr
2008_0318 ▶ 2008_0406
리찌슨_동서양 장기 겨루기1_캔버스에 유채_180×300cm_2007
리찌슨의 상징(Symbol) & 은유(metaphor) ● 중국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찌슨(李繼森)의 그림은 개인과 역사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영향력과 그 속에 매개되어 있는 자아와 사회적 신념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자아(ego)는 역사의 영향력 속에서 끊임없는 발전과 반성, 지속과 비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경험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리찌슨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인간의 모습은 그가 속한 사회와 삶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상징(symbol)과 은유(Metaphor)에 관한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상징성은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가 작가의 작업과정을 통해 서로 융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심리활동이자,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변형된 자아다. 즉 역사적 변화 혹은 발전이라는 반복 속에 놓인 자아는 기울어진 두상에 큰 눈과 귀 그리고 입이 그려진 얼굴뿐 아니라, 손가락 모양과 인물을 구성하는 구도와 배경과의 관계 그리고 색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리찌슨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특징은 개인과 집단적 관계에 대한 상징과 은유다. 이지점은 바로 리찌슨이 현실과 비현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담겨지는 곳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개인과 집단은 사회적 관계 속에 공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일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길들여지는 자기인식과 자기비판의 반영이기도 하다. 리찌슨_비밀1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07
리찌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은 몇 가지의 의미를 유추하게 하는 유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거나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응시하는 모습 그리고 가늘고 긴 손가락은 우아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45도에서 90도 각도로 기울어진 두상, 서로 일정한 질서 속에서 겹쳐진 인물 등은 사회적인 배경을 상징하고, 길고 가늘게 어딘가를 향하는 손과 손가락은 개인적인 감성에 대한 은유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를 통해 작가는 사회적인 배경과 개인적인 감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를 설정해 간다. ● 이 같은 그의 태도는 사회적인 환경 속에 매개되어 있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담은 상징이자, 이 상징은 동시에 개인적인 자아와 집단적인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자아(외적자아)에 대한 암시가 아닐까. 이 암시는 타자에게 보여지는 자아에 대한 애잔한 시선이 담겨지는 곳이다. 반쯤 기울인 얼굴모습은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페르소나(Persona)를 담고 있다. ● 이처럼 페르소나에 대한 그의 상징성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중첩된다. 하나는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의 암시고, 다른 하나는 자기성찰에 빠진 멜랑콜리(melancholy)에 대한 은유다. 이 두 가지의 의미는 현실통찰과 조형적 관념이 융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작가의 심리활동의 산물인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로 이루어진 집단정신의 산물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집단무의식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잊고 살기도 한다.
리찌슨_영웅본색1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07 리찌슨_하늘에 뜬구름1_캔버스에 유채_180×150cm_2007
융(C.G.Jung)에 의하면, 페르소나는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라고 한다. 이것은 현실이기는 하지만, 2차적인 현실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아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소통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자, 2차적인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2차적인 현실인 페르소나는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페르소나는 외부세계와의 적응과정에서 생긴 기능적 효과의 측면이 강한 사회적응방법을 체득하는 사회적 자아다. 이것은 사회집단이 특수한 상황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규범이기도하다. 이처럼 외부세계에 적응하고 또 소통하기 위한 가면인 페르소나는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상응하는 얼굴이 바로 페르소나인 것이다. ● 리찌슨의 작품은 바로 이런 인간의 페르소나 속에 잠재된 개인적인 자아와 사회적 자아에 대한 해석이 상징과 은유 속에 융합되어있다. 사회가 분화하고 한사람이 사회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사회적 자아는 확대 재생산되어간다. 그러나 페르소나라고 하는 사회적 가면을 벗기고 나면 바로 뒤에 숨어있는 자아가 부각된다. 리찌슨_흡연자3_캔버스에 유채_180×150cm_2007
자아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과잉으로 멜랑콜리가 되기도 한다. 멜랑콜리는 여러 철학자로부터 인간이 그 어떤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도 한다. 리찌슨의 작품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페르소나에 대한 상징과 은유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식화된 인물의 표현방식에는 나르시스적 자아가 에너지로 충만한 밝고 애잔한 멜랑콜리가 담겨져 있다. 이처럼 작가가 바라보는 인물의 특성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은유이자 사회적 자아가 담긴 공간이고 색채의 언어다. ■ 김옥렬
MJ갤러리_MJ GALLERY
mjgallery.kr
2008_0318 ▶ 2008_0406
리찌슨_동서양 장기 겨루기1_캔버스에 유채_180×300cm_2007
리찌슨의 상징(Symbol) & 은유(metaphor) ● 중국베이징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찌슨(李繼森)의 그림은 개인과 역사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영향력과 그 속에 매개되어 있는 자아와 사회적 신념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자아(ego)는 역사의 영향력 속에서 끊임없는 발전과 반성, 지속과 비판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경험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리찌슨의 작품에서 보여 지는 인간의 모습은 그가 속한 사회와 삶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상징(symbol)과 은유(Metaphor)에 관한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의 상징성은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가 작가의 작업과정을 통해 서로 융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심리활동이자,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변형된 자아다. 즉 역사적 변화 혹은 발전이라는 반복 속에 놓인 자아는 기울어진 두상에 큰 눈과 귀 그리고 입이 그려진 얼굴뿐 아니라, 손가락 모양과 인물을 구성하는 구도와 배경과의 관계 그리고 색의 변화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리찌슨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특징은 개인과 집단적 관계에 대한 상징과 은유다. 이지점은 바로 리찌슨이 현실과 비현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담겨지는 곳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개인과 집단은 사회적 관계 속에 공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일정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길들여지는 자기인식과 자기비판의 반영이기도 하다. 리찌슨_비밀1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07
리찌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은 몇 가지의 의미를 유추하게 하는 유형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거나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응시하는 모습 그리고 가늘고 긴 손가락은 우아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45도에서 90도 각도로 기울어진 두상, 서로 일정한 질서 속에서 겹쳐진 인물 등은 사회적인 배경을 상징하고, 길고 가늘게 어딘가를 향하는 손과 손가락은 개인적인 감성에 대한 은유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를 통해 작가는 사회적인 배경과 개인적인 감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를 설정해 간다. ● 이 같은 그의 태도는 사회적인 환경 속에 매개되어 있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담은 상징이자, 이 상징은 동시에 개인적인 자아와 집단적인 자아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자아(외적자아)에 대한 암시가 아닐까. 이 암시는 타자에게 보여지는 자아에 대한 애잔한 시선이 담겨지는 곳이다. 반쯤 기울인 얼굴모습은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페르소나(Persona)를 담고 있다. ● 이처럼 페르소나에 대한 그의 상징성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중첩된다. 하나는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의 암시고, 다른 하나는 자기성찰에 빠진 멜랑콜리(melancholy)에 대한 은유다. 이 두 가지의 의미는 현실통찰과 조형적 관념이 융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작가의 심리활동의 산물인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로 이루어진 집단정신의 산물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집단무의식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잊고 살기도 한다.
리찌슨_영웅본색1_캔버스에 유채_150×180cm_2007 리찌슨_하늘에 뜬구름1_캔버스에 유채_180×150cm_2007
융(C.G.Jung)에 의하면, 페르소나는 개인과 사회가 어떤 사람이 '무엇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서로 타협하여 얻은 결과라고 한다. 이것은 현실이기는 하지만, 2차적인 현실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아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소통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자, 2차적인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2차적인 현실인 페르소나는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더 크게 생각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페르소나는 외부세계와의 적응과정에서 생긴 기능적 효과의 측면이 강한 사회적응방법을 체득하는 사회적 자아다. 이것은 사회집단이 특수한 상황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규범이기도하다. 이처럼 외부세계에 적응하고 또 소통하기 위한 가면인 페르소나는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상응하는 얼굴이 바로 페르소나인 것이다. ● 리찌슨의 작품은 바로 이런 인간의 페르소나 속에 잠재된 개인적인 자아와 사회적 자아에 대한 해석이 상징과 은유 속에 융합되어있다. 사회가 분화하고 한사람이 사회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사회적 자아는 확대 재생산되어간다. 그러나 페르소나라고 하는 사회적 가면을 벗기고 나면 바로 뒤에 숨어있는 자아가 부각된다. 리찌슨_흡연자3_캔버스에 유채_180×150cm_2007
자아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과잉으로 멜랑콜리가 되기도 한다. 멜랑콜리는 여러 철학자로부터 인간이 그 어떤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라고도 한다. 리찌슨의 작품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페르소나에 대한 상징과 은유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식화된 인물의 표현방식에는 나르시스적 자아가 에너지로 충만한 밝고 애잔한 멜랑콜리가 담겨져 있다. 이처럼 작가가 바라보는 인물의 특성은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은유이자 사회적 자아가 담긴 공간이고 색채의 언어다. ■ 김옥렬
'Exhibition > Painting&Prin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Robert Rauschenberg (0) | 2008.03.19 |
---|---|
국대호 (0) | 2008.03.14 |
권기수 (0) | 2008.02.23 |
2008년 런던한국문화원 개관 기념展 (0) | 2008.02.05 |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완전 대 실망! (1) | 2008.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