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_0229 ▶ 2008_0322
코리아아트센터_KOREA ART CENTER
www.koreaartgallery.kr 미세함과 무한 사이, 그리고 회화적인painterly 시각 ● 작년 가을, 한 전시장에서 감탄의 눈길로 국대호의 ‘뉴욕(New York)’ 시리즈를 바라보며 나는 언뜻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를 떠올렸었다. 국대호의 2005-2006년 ‘칼라 스트라이프(color stripe)’ 작업들에서 리히터의 초기 ‘칼라 차트(Color chart)’가 생각났고, 그의 ‘뉴욕’ 시리즈 도시풍경들에서 리히터의 사진으로부터 불분명한 회화적 윤곽선으로의 이행이 연상됐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히터는 국대호와는 달리 풍경을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 무한한 것,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1966)고 했던 리히터의 말과 ‘상(像)과 재현(再現)의 문제로부터 현(現)의 시각의 힘’(1995)을 생각하는 국대호의 말을 오가기 시작한다. 1995년경부터 10여 년 동안 그가 진행해 왔던 작업들은 회화적인 붓질, 붓질된 칼라 모자이크와 벽에 기대어 놓은 댄 플레빈(Dan Flavin)의 판자와도 같은 칼라석고보드, 모노크롬 화면과 붓질이 결합된 구성 등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가 학문적으로 배워 온 전통적인 회화의 붓질과 20세기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식 모더니즘 담론의 평면성의 문제 그리고 3차원 물질과 공간과의 관계라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과 탐색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의 예술이 생명력을 갖는 지점은 서구의 미술사와 미학적 논쟁 속에 있을까? 자신의 예술의 생명을 확인하게 위해 그는 철저하게 작가의 눈을 재점검하는 색채의 문제부터 다시 시작한다. 뵐플린(Heinrich Wofflin) 이래로 우리는 대상의 윤곽을 흐리게 하는 것이 회화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인상주의 시기 무렵에 사진이 전통적인 회화 예술 속에 침투한 이후 사진과 그려진 회화 사이의 문제가 21세기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안다. 나는 국대호의 ‘칼라 스트라이프’ 연작들도 인상주의 작가들처럼 우리의 시각을 빛으로 확인하게 하는 색깔들의 변이에 대한 철저한 확인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훗날 그의 작업을 위한 기초백과사전과도 같은 수많은 색깔들은 프리즘에서처럼 경계가 없다.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미술과 대상성(Art and Objecthood)’에서 언급했듯이 토니 스미스(Tony Smith)가 어두운 밤, 뉴저지의 미완성 유로도로를 혼자 주행하면서 어떤 예술로도 표현된 적이 없는 현실을 체험하며 예술의 종말에 다다른 듯 느꼈던 것처럼, 국대호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눈을 스치며 지나가는 모든 광경들을 홀로 바라본다. 그러나 2차원 회화의 평면성과 전통적인 붓질, 그리고 3차원 물질과 공간 사이의 문제를 오랫동안 탐색했던 그가 회화의 종말을 받아들이는 대신 밤과 낮의 모든 빛을 받아 가시화되는 현상들을 다시 회화에 담기로 작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햇빛을 받은 자동차의 표면 위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반사광선과 햇빛으로 떨리는 나뭇잎은 어스름한 저녁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도시의 불빛들처럼 찰나적이지만 작가의 뇌리 속에 깊이, 그리고 거부할 수 없게 오랫동안 각인되기 때문일까? 그 밤과 낮의 빛들은 작가의 예리한 집중성을 통해 형언할 수 없는 색깔들이 되어 점점이 화면에 흩어지고 마력처럼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그 반짝이는 찰나의 빛으로부터 바다 너머와 도시의 불빛 너머 하늘로 퍼질 때, 우리는 ‘무규정적인 것, 무한한 것,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는 리히터의 말처럼 무한성과 우주적인 확장을 작가와 함께 공감한다. 회화의 전통적인 재현능력이 갖는 불가해한 힘은 그림 안에서 현실이 단번에 모두 포착되지 않는다는 불가능성을 전제하며, 국대호의 윤곽 흐리기 역시 고정적인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최근의 젤리빈 시리즈들은 칼라 스트라이프 시리즈처럼 다시 색채의 문제에 집중되는 추상적 화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색채에 대한 개념적인 탐색과정과 풍경을 지나 고도의 집중력으로 사물을 관찰하며 그 색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그것은 회화적인(painterly) 붓질과 복제로서의 사진 사이, 끝없는 ‘경계없음’으로 사고의 ‘미끄러짐’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작가(혹은 우리 모두)의 정신영역과 사진이 기계적으로 포착한 순간의 찰나 사이를 오가는 과정이다. 나는 그 속에서 작가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의 작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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