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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Painting&Pr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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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nstory 2008. 7. 31.

 

 

 

 

 

 

 

 

 

 

 

 

 

 

 

 

 

 

 

 

 

 

 

 

6월 19일 ~ 9월28일

성곡미술관 본.별관 전관http://www.sungkokmuseum.com

위대한 모험- 척 클로스 판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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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클로스 인터뷰 ● “저는 1960년대에 20대였어요. 이 시기에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작업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중심 화두였지요. 솔 르윗 Sol Lewitt 의 벽화처럼 특정 색상을 특정 방식으로 사용한 훌륭한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항상 의식했던 것이었고, 아주 흥미롭게 생각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게 된다고 믿었어요. 대단한 발상이 떠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구름이 갈라져 번개가 머리를 치기 바라는 것과 비슷한데, 그러기 보다는 차라리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 더 나아요. 작품을 만들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처음에 작품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변수를 바꿔 다른 것을 할 수도 있는 거죠. 어느 한가지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어요. 저는 지난 40년 동안 작업에 한계를 느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작업실에서 한가지 변수만 바꾸면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저는 새로운 것을 구상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판화작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일은 정말 즐거워요. 마치 사물을 한가지 고정된 모습으로만 보여주다가 순차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죠. 우리가 보고 경험해야 할 것은 도상학적 측면에만 국한돼 있지 않아요. 스타일은 과정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경우가 많지, 도상학과는 관련이 없어요. 그 예술가만의 스타일이란, 어떤 과정으로 제작했느냐 하는 것이지, 무엇을 제작했느냐는 아니니까요. 저는 스스로를 경험이라는 음악을 편곡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제 경험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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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클로스는 초대형 초상화 작업을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른다 할 지라도

분명 그의 그림은 보았을 것 이다.

 

지금부터 척 클로스를 소개하겠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배경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척 클로스는 1940년 미국 출생의 지긋한 아저씨이다. 그는 위스콘신 주의 가난하고 평범한 한 미국 가정에서 외동아들로 자라왔다. 기계공인 아버지, 페인터 였던 어머니의 밑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가 11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사별 후 유방암에 걸렸다. 또한

그의 할머니는 파킨스병에 걸렸다. 그리고 어린시절 그는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역시 10살이 되던 해 .그는 안면인식장애 라는 진단을 받았다. 또한 그는 심각한 신장장애까지 얻었다. 1988년 그는 한 수상식장에서 수상을 하게 되는데 그 직후 엄청난 허리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척추작용의 장애로 인해 팔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척 클로스의 부모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아들에게 만큼은 좋은 교육을 받게 해 주고 싶어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굉장한 교육열을 보였고 그 결과 척 클로스는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예일대학에 입학 하였다.

그 는 처음 안면인식 장애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그는 친구와 가족들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친구와 가족의 얼굴을 사진 찍은 뒤 짧게는 4~5개월 길게는 2년에 걸쳐 작업을 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왜 주변사람들의 얼굴만 그리느냐고 질문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 얼굴에 집착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내 기억에 새겨 두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르다.”

또한 자신의 그린 그림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인식되는 것이 싫어 오로지 지인들의 사진으로만 작업하는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작품은 엄청난 가격을 호가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의 작품을 논할 때 또 한가지 빼 놓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엄청난 크기의 캔버스에 숨이 막힐 정도의 묘사.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으로 착각 할 정도의 표현력이다. 이러한 작업을 두고 ‘포토리얼리즘’ , ‘극 사실주의’ 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명칭들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 일까?

 

극사실주의 (hyperrealism)

슈퍼리얼리즘, 포토리얼리즘, 라디칼라리얼리즘, 샤포커스리얼리즘, 포토라트 라고도 한다.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처럼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며, 아무 뜻 없이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다루어진다. 또한 감광제를 캔버스에 발라 직잡 프린트 하는 경우도 있다.

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리얼리즘으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따라서 이것은 팝 아트와 같이 매일매일의 생활, 즉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한편 팝 아트ㅘ는 달리 아주 억제된 것이어서 아무런 코멘트 없이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취급한다. 그러나 감정이 배제된 채 기계적으로 확대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가 육안으로 알아낼 수 없는 추악함, 이를테면 모발에 가려진 점이나 미세한 흉터까지도 부각되어, 보통이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현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을 받게 한다.

극사실주의는 미국적인 즉물주의가 낳은 미술사조라고도 볼 수 있지만, 종래의 추상미술과 사진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닥가로는 작품제작에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척 클로스, H 캐노비츠, M 몰리 등과 사진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P. 펄슈타인, S 틸림 등이 있다.

- 발췌 네이버 백과사전 -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척 클로스는 극사실주의 초상화가 이다. 앞서 본 자료에서 극사실주의 작가들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보았다.

그렇다면 척 클로스는 어떤 기법을 사용하고 있을까?

먼저 척 클로스도 친구, 가족, 혹은 자신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10배 이상 확대 하여 작업을 한다. 이렇게 확대한 이미지에 세밀하게 그리드(grid)를 그리고 하나하나 셀(cell) 처럼 채워나간다. 이 셀 은 다이아몬드스타일의 도트, 혹은 동그라미 도트 등 여러 가지 도트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평범하게 보이는 초상화라도 자세히 보면 천만가지 강렬한 색의 집합체처럼 보인다. 이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앞서 말했듯. 척 클로스는 전신이 마비되어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시간적으로도 힘든 작업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현실적으로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의 작업 팀과 그림에 대할 열정이 가득한 척클로스의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붓을 손이나 입에 고정시킨 후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몸으로 메조틴트. 목판화, 실크스크린 등 많은 판화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Printing

척 클로스는 동판, 석판, 목판, 실크스크린 등 여러 가지 판화기법을 이용 하여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페인팅과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초상화를 판화로 제작 한 것이다.

판화를 전공하는 우리를 떠올려 보면 보통 40X60사이즈,혹은 조금 더 큰 사이즈라 한다면 60X90 사이즈의 작업들을 하며 이 조차도 판이 커질수록 부담스러워진다. 또한 작업시간도 상당히 많이 소요 된다. 그러나 척 클로스는 판화로도 엄청난 크기의 작품이 가능하며 그 완성도 또한 우리들의 작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사실 이 작업들은 주로 유명 공방의 마스터 프린터들과 함께 작업을 하였는데, 누가 제작을 했든, 판화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재미있는 것 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MEZZOTINT>

메조틴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메조틴트이다. 로커를 이용하여 블랙판을 만들고 밝은 부분을 긁어 내는 기법이다. 메조가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굉장히 힘들다는 사실은 판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척 클로슨 이 기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메조틴트의 특성상 다른 작품만큼 거대하지는 않다.

이 판은 36inch (91cm), 36x45(91cm x 114cm)의 크기에 작업하였다. 판 크기의 특성상 로커로 메를 놓는 것은 불가능. 그래서 그는 일종의 포토에칭 기법으로 블랙판을 만들었다. 동판위에 매우 작은 dot를 무수히 많이 올려놓고 부식을 시킨 것 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실크스크린+포토에칭 인 것이다. 이렇게 블랙판을 만들고 그 다음은 그만의 그리드를 나누고 그 안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방법을 택하였다. 긁어 낼 때는 그림의 중앙부터 해 나갔다고 한다. 이 때 쓰이는 것은 우가 알고 있는 스크래퍼와 버니셔이다.

척클로스는 오래 전부터 쓰이던 전통적인 방식의 메조틴트 기법을 사용 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화이트를 사용하지 않은 채 블랙으로만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메조틴트 기법이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렇게 큰 판을 어떻게 프린팅 했을까? 판이 너무 커서 무려 새 프레스를 주문했다고 한다.

Pulp - Paper Multiples

 

척클로스의 판화 가운데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신기한 기법들이 여러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이 Pulp - Paper Multiples 이다. 이 방법은 먼저 종이를 직접 만든다.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종이를 물에 젖은 채로 일일이 켜켜이 쌓아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지를 만들 때 쓰이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때 작업은 100%수작업으로 이루어 진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종이는 물에 젖어 있으므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불로 구워준다고 한다(일종의 토치). 그리고 그 위에 그레이 스케일로 일일이 구획을 나누고 넘버를 적는다.

그리고 그 그레이 넘버에 따라서 작은 명암의 조각들을 일일이 만들고 구워낸다.

이때의 그레이 스케일은 주로 24그레이 스케일을 이용했다. 이 것은 후에 측클로스가 spitbite etching을 할때 크게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방법도 있는지 이 자료 조사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한번쯤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