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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Painting&Prints

장승택

by @artnstory 200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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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빛이 한여름 정오의 빛이라면 나의 빛은 대지와 맞닿은 새벽녘의 하늘빛이며, 일식 때의 태양 언저리 빛이며, 성숙하지 않은 소녀의 길지 않은 가운데 손톱의 투명한 빛이다. 빛과 색채는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지만 나의 작업에 있어서 그것들은 반투명한 매체와 함께 절대적 요소가 된다. 증식된 투명한 색채와 빛의 순환에 의한 물성의 구체화를 통한 정신의 드러냄이 내 작업에 진정한 의미라 하겠다. ■ 장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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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Painting
2008_0313 ▶ 2008_0412

가인갤러리  www.gaain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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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 물질에 대한 회화적 천착 ● 붓과 캔버스를 떠난 회화를 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장승택의 회화는 붓과 캔버스를 떠난 지 오래다. 회화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서구 ‘모더니즘’의 논리대로라면 그의 회화는 회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빛과 색의 물질적 현현(顯現)이 회화의 가장 중요한 본성이라고 한다면 그의 회화는 분명 회화이다. 붓을 떠나 회화의 틀 안에서 다양한 재료로 실험을 거듭해 오는 동안 장승택은 빛과 색이 물질을 통해 보편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유성물감이나 안료를 섞은 반투명한 파라핀이나 합성수지(레진)였고, 한동안은 물감이 엷게 발린 패널들로 이루어진 플랙시글라스 박스이기도 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플라스틱 시대를 일단락 짓고 유리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 전반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것은 표면 위에 얹어진 안료로서의 색이 아닌 빛과의 소통에 의해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색에 대한 천착이며, 빛과 색을 머금어 세계와의 만남을 구체화하는 질료(質料)로서의 물질에 대한 탐구이다. ● 장승택의 1990년 첫 개인전은 오늘날 그의 고유한 회화를 암시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평론가 장 루이 훼리에(Jean-Louis Ferrier)가 “물질에 있어서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쓴 이 전시에서 장승택은 색과 형상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거칠고 대담하게 자신의 내면 에너지를 표출한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이 시기 그림들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캔버스에 붓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물감의 흘림과 번짐, 얼룩 등이 주조를 이루고 금속 오브제가 콜라주 되어 있는 등 향후 물성에 대한 탐구로 일관된 그의 작업의 전개를 예견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 첫 개인전 이후 5년 여간 장승택의 물질에 대한 탐구는 절정에 달한다. 캔버스 표면 위의 물감이 가지는 물성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오일, 왁스, 파라핀, 합성수지, 소금, 그을음 등 회화작가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재료들을 작업으로 가져와 다양한 물성에 대한 실험을 행하게 된다. 이는 마치 1960년대 말, 흙, 석면, 흑연, 얼음, 타르, 고무 등의 반미학적인 재료를 통해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었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아르테 포베라가 재료의 물성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설치 위주의 작업을 했다면, 장승택은 일정 정도 빛이 투과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회화의 사각 틀 안에서 빛과 반응하는 색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당시 그는 일정한 두께의 프레임 안에 파라핀이나 왁스를 붓고 유성물감을 섞어 응고시키거나 합성수지에 안료를 넣어 굳힌 매끈한 색면을 보여주었고, 유리와 유리 사이에 소금을 켜켜이 쌓거나 유리 안쪽 면에 양초로 그을음을 입혀 흰색 또는 검은색의 비균질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당시 작품들은 외견상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에서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며, 사실상 회화라기 보다는 물성이 두드러진 입체적 오브제에 가깝다. 또한 산업적인 재료와 규격화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끓이기, 녹이기, 흘려붓기, 굳히기, 태우기, 그을리기 등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노동의 과정에 의존한 까닭에 ‘미니멀리즘’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 90년대 초반의 본격적인 물성 탐구의 시기를 거쳐 장승택은 플랙시글라스라는 반투명하고 매끈한 대지 위에 안착하게 된다. 이전에 그가 한 동안 매진했던 합성수지 작업은 빛을 투과하면서도 안료와 균질 하게 섞이고 표면이 매끈한 재료의 특성상 어느 정도 그의 욕구를 만족시켰으나, 평면 위에 물감을 바르는 회화의 기본 공정과는 크게 달라 회화의 모체(母體)로부터 출발한 그가 오래 머물 곳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캔버스 대신 플랙시글라스 표면 위에, 붓 대신 롤러나 손으로 유성물감을 바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플랙시글라스를 일정한 두께의 박스 형태로 만들어 빛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부여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색이 엷게 칠해진 표면을 투과한 빛이 일정 공간을 거쳐 안쪽 면의 다른 색을 만나 반사되어 나옴으로써 일반적인 캔버스의 단색회화와는 전혀 다른 빛과 색, 물질이 하나 된 ‘중층의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폴리페인팅(Poly-Painting)’이라 이름 붙은 이 회화는 장승택 회화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십 여 년간 점차 다른 모습으로 발전되어 왔다. 동일한 색일지라도 안쪽 면의 색이 달라짐에 따라 전체적으로 미세한 색조의 차이를 보이도록 했고, 물감이 칠해진 표면을 손 날을 세워 부분적으로 밀어냄으로써 행위의 흔적을 남겼다. 또한 하나의 표면 위에 여러 차례 다른 색면을 올려 채도가 낮아진 단색면을 보여주었고, 가장 최근에는 한 화면 위에 같은 계열의 색을 그라데이션하거나 대비를 이루는 다른 색들을 나란히 칠하여 일종의 다색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장승택의 폴리페인팅은 반투명한 재질을 가진 플랙시글라스의 특성상 색과 반응하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평면 위에 물감을 칠하는 회화의 기본적인 행위를 만족시키는 바 오랜 기간 그의 고유한 회화를 대변해왔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시도된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Trans-Painting)’은 폴리페인팅이 재료와 기법의 변화를 겪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작업의 또 다른 축인 ‘폴리드로잉(Poly-Drawing)’과 결합하여 탄생한 연작이다. 폴리드로잉은 강물 위에 작은 돌맹이가 빠져 파장을 일으키듯 흰 바탕에 깊이가 느껴지는 구멍이 아롱지는 형상을 가진 것으로, 색에 치중한 폴리페인팅과는 분명 차별화되는 것이었다. 원형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지도록 커팅한 여러 겹의 반투명 폴리에스테르 필름이 겹쳐져 형상을 만들어내는 폴리드로잉은 색(色)이 아닌 커팅된 선(線)이 이미지를 만들어낸 까닭에 ‘페인팅’이 아닌 ‘드로잉’의 명칭을 부여 받았다.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듯한 이 드로잉은 종전의 균질한 색면회화와는 대조를 이루면서도, 그간 한결같이 추구해 온 화면의 깊이와 빛의 효과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이 폴리드로잉은 1996년 처음 발표된 이래 간헐적으로 보여져 왔을 뿐 폴리페인팅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분히 연구, 발표되지 못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한동안 중단했던 폴리드로잉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고, 십 년 가까이 고수해왔던 플랙시글라스를 떠나 유리를 주재료로 여러 가지 시도를 감행해 폴리드로잉과 폴리페인팅의 본격적인 결합을 꾀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두 종류의 작업을 조합하여 화려한 변주곡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몬드리안이 〈콤포지션〉의 화면을 구성하듯 장승택은 트랜스페인팅에서 드로잉의 흰 면과 페인팅의 색 면을 자유자재로 옮겨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이면화의 형식을 넘어 비율과 크기가 다른 화면들로 구성한 여러 형태의 삼면화 혹은 사면화에 이른다. 따라서 트랜스페인팅이라는 명칭은 그의 작품이 재료 면에서 ‘투명해지고(transparent)’ 방법 상에서 단위작품들을 조합하여 원래의 회화 형태를 ‘변형하였(translate)’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 사실상 트랜스페인팅은 그간 붓과 캔버스를 떠나 온 장승택 작업의 총체적 집약본이자 새로운 전환점이다. 지금까지 축적해 온 모든 기술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물질에 대한 탐구가 작품의 성격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색조는 원색 위주로 더 밝고 감각적으로 변하였고, 재료는 더 다양해지고 제작공정은 더 정교해져 전체적으로 미끈하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반투명한 플랙시글라스와는 달리 빛을 완전히 투과하는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색이 보다 명쾌해 보이도록 했으며, 주로 유리 안쪽 면에 색을 칠하고 바깥 표면은 매끈한 유리 재질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회화라는 느낌보다는 색유리 패널 같은 기성의 느낌이 강하다. 또한 색과 투명도가 상이한 여러 종류의 유리를 사용하고 유리 안쪽 면에 컬러 시트지나 거울과 같은 다른 재료를 얹어 다양한 효과와 미묘한 차이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드로잉의 경우 앞면 유리의 종류나 폴리에스테르 필름의 재질과 안쪽 판넬에 칠해진 색에 따라 구멍의 색과 전체적인 색조가 달라지도록 하고, 커팅으로 만들어낸 선들 외에 칼날의 자국만 남긴 선들을 함께 병치하여 이미지의 변주를 꾀하고 있다. 폭 6cm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색을 칠한 유리를 얹거나(페인팅) 유리 위에 여러 겹의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얹은 후(드로잉) 일정 공간을 띠우고, 색을 칠한 포맥스 패널로 뒷면을 막아 마무리하는 작업공정은 이전 작품에서 발전되어 나왔지만 보다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재료의 특성과 제작과정의 정교함에 힘입어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은 이전보다 더욱 ‘미니멀’ 한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작업의 전 공정을 혼자서 직접 해내는 그에게 트랜스페인팅의 다양해진 재료와 정교해진 제작과정은 신체적 행위와 노동력의 개입을 극대화하도록 하였고, 그로 인해 그것은 외견과는 달리 사실상 ‘미니멀 아트’에서 더욱 멀어지게 된 셈이다. 사실상 장승택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이처럼 제작과정과 작품의 외견이 상치(相馳)한다는 점에 있다. 산업용 원자재처럼 보이는 이전의 합성수지나 파라핀 패널이 그가 손수 밤낮으로 끓여 붓고 굳혀서 만든 것이었듯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기성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이는 이 매끈한 색면회화는 그가 직접 알루미늄을 잘라 프레임을 만들고 유리에 색을 칠하고 포맥스 뒷면에 나무를 잘라 지지대를 만드는 것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작업으로 해낸 것이다. 그 누가 그토록 ‘미니멀’한 외관 뒤에 이토록 ‘맥시멀’한 과정이 숨어 있는 줄 짐작이나 하겠는가. ● 따라서 장승택의 작품을 ‘모노크롬 회화’나 ‘미니멀 아트’로 지칭하는 그간의 일반적인 평가는 명백한 오류다. 그의 회화는 붓과 캔버스를 기본 요소로 상정하는 ‘모노크롬 회화’의 미술사적 함의를 완벽히 거스를 뿐 아니라 외견상 단색의 평면회화로 보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단색도 아니며 평면도 아니다. 또한 산업적인 재료를 사용한 정제된 외관 뒤에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수작업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 안의 모순되고 상충하는 여러 사조와 개념을 가로지르고 넘어서면서 끊임없이 회화의 본성을 쫓는 그이기에 ‘다(多)’ 혹은 ‘복합(複合)’을 뜻하는 ‘poly’나 ‘가로지른다’ 혹은 ‘넘어선다’는 뜻의 ‘trans’와 같은 그의 회화의 부제들이야말로 그의 회화에 관한 매우 적절한 수식어가 될 것이다. 그의 회화는 시간을 두고 오래 감상할수록 그 진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하루 종일 빛이 들고 남에 화답하며 처음에는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색면이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들리고 만져진다. 이는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고 신선한 샐러드 위에 뿌려진 들기름 냄새를 즐기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이면에 내재되어 있다가 조금씩 베어 나오기 때문이며, 오랜 시간 그가 빛과 색, 물질과 나누어 온 깊은 교감이 묻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캔버스와 붓을 떠나 십오 년 넘게 이어진 그의 긴 ‘화행(畵行)’은 회화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을 불평 없이 쉬지 않고 걸어온 것이었고, 그 길은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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