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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흑인이기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흑인 노예, 유색인종 그리고 더 약한 여성, 보호받지 못하면 부서지는 아이들까지. 그는 인종차별에 관한 사실을 뼈져리게 겪은 그의 선조들을 통해 완벽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단지 검은 실루엣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흑인노예의 역사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쟝 미셸 바스키아가 그랬듯이, 그가 흑인이기에.  

 

http://www.whitney.org
Kara Walker: My Complement, My Enemy, My Oppressor, My Love
on view October 11, 2007 - February 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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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Walker, You Do, 1993-94. Cut Paper on canvas, 55 x 49 in. (140 x 124.5 cm). Collections of Peter Norton and Eileen Harris Norton. Photography courtesy the artist and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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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Walker. Miss Obedience (detail). 2000. Maquette for b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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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Walker, Excavated from the Black Heart of a Negress , 2002
(detail)
Courtesy the artist and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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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a Walker, Darkytown Rebellion, 2001. Cut paper and projection on wall, 14 x 37 ft. (4.3 x 11.3 m) overall. Musee d’Art Moderne Grand-Duc Jean, Luxembourg. Photograph courtesy the artist and Sikkema Jenkins & Co., New York

2002년 이 작품을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봤었다
 Moving Pictures: Contemporary Photography and Video
from the Guggenheim Museum Collection

Solomon R. Guggenheim Museum
June 28, 2002–January 12, 2003 그 때부터 찍어놨던 작가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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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rrection! (Our Tools Were Rudimentary, Yet We Pressed On), 2000 (installation view). Cut paper silhouettes and light projections, site-specific dimensions. Purchased with funds contributed by the International Director's Council and Executive Committee Members. 2000.68. Photo: Ellen Labe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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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rrection! (Our Tools Were Rudimentary, Yet We Pressed On), 2000 (detail). Cut paper silhouettes and light projections, site-specific dimensions. Purchased with funds contributed by the International Director's Council and Executive Committee Members. 2000.68. Photo: Ellen Labe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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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찍었던 사진을 드뎌 찾았습니다. 컴속에서



KARA WALKER


Kara Walker arranges life-sized silhouetted figures into raucous tableaux that recount the brutal, and often repressed, history of American race relations. Her unique use of the paper cut-out technique derives from the old craft of silhouetting. The artist likens this representational method to the nature of stereotypes themselves, in which the complexities of individual identities, situations, and personalities are simplified and distorted into easily readable, caricatured forms. Walker derives her imagery from the visual language of the antebellum South and from the tradition of the minstrel show and redeploys them to subversive ends. Performed by white actors in blackface, the minstrel theater parodied the lives of African Americans and allowed whites to vicariously break their own cultural taboos by portraying unbridled sexuality, unstructured time, and puerile behavior. In her work, Walker inverts the roles of these characters. Her stylized figures enact the violence that attends oppression and embodies scenes of bestiality, castration, murder, and cannibalism.

In Insurrection! (Our Tools Were Rudimentary, Yet We Pressed On) (2000), a series of grisly scenes unfold. A plantation owner propositions a naked slave behind a tree and a woman with a tiny baby on her head escapes a lynching, while a group of people eagerly torture a victim. In this piece, Walker expands the vocabulary of her shadowy forms to include projected silhouettes and colored lights. When viewers walk in front of these projections, their shadows are introduced into the scene, denying them the comfortable position of spectator and implicating them in the unfolding events.

 

http://visualarts.walkerart.org

Kara Walker: My Complement, My Enemy, My Oppressor, My Love, the artist's first full-scale American museum survey, features works ranging from her signature black-paper silhouettes to film animations and more than 100 works on paper. Among the most complex and prolific American artists of her generation, Walker has gained international recognition for her room-size tableaux depicting historical narratives haunted by sexuality, violence, and subjugation, but made using the genteel 18th-century art of cut-paper silhouettes. Over the years the artist has used drawing, painting, colored-light projections, writing, shadow puppetry, and, most recently, film animation to narrate her tales of romance, sadism, oppression, and liberation. Walker's scenarios challenge conventional readings of American history and expose the collective, and ongoing, psychological injury caused by the legacy of slavery. After its presentation at the Walker and the Whitney, the show will travel to the Hammer Museum, Los Angeles.

Kara Walker: My Complement, My Enemy, My Oppressor, My Love is organized by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and is made possible by generous support from the Henry Luce Foundation,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the Lannan Foundation, the Peter Norton Family Foundation, Linda and Lawrence Perlman, and Marge and Irv Weiser. Additional support is provided by Jean-Pierre and Rachel Lehmann.

The New York presentation of the exhibition is supported by the Lily Auchincloss Foundation and The Cowles Charitable Trust.

This exhibition is made possible, in part, by Altria Group, Inc.


Kara Walker was born in Stockton, California, in 1969. At the age of 13, she moved to Atlanta, Georgia, when her father took a teaching position at Georgia State University. The move from an integrated California to a part of the country with pronounced racial divisions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artist. “I became black in more senses than just the kind of multicultural acceptance that I grew up with in California. Blackness became a very loaded subject, a very loaded thing to be—all about forbidden passions and desires, and all about a history that’s still living, very present . . . the shame of the South and the shame of the South’s past; its legacy and its contemporary troubles.” After receiving a BFA from the Atlanta College of Art in 1991, Walker moved to Providence, Rhode Island, to pursue an MFA at the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Since that time, she has created more than 30 room-size installations and hundreds of drawings and watercolors, and has been the subject of more than 40 solo exhibitions. She is the recipient of numerous grants and fellowships, including the John D. and Catherine T. MacArthur Foundation Achievement Award (1997) and, most recently, the Deutsche Bank Prize (2004) and the Larry Aldrich Award (2005). She was the United States representative for the 25th International São Paulo Biennial in Brazil (2002). She currently lives in New York, where she is associate professor of visual arts at Columbia University,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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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945 Madison Avenue at 75th Street
New York, NY 10021
General Information: 1 (800) WHIT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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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nstory Art&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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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09.10.09 22:2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검은 실루엣은 작가가 힘들게 만들면 만들수록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칫 애니메이션 정도로만 느껴지는 실루엣 작업은 세밀하게 표현되었을때 마치 어두운 저녁녘에 드러나는 사진과 같은 느낌으로 완성된다는 말이다.

성곡미술관
http://www.sungkokmuseum.com

2007_1012 ▶ 2007_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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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요 토리미슈_인사이드 트렉_가변설치_2004
우선 배경에 대해 ● 베를린 장벽해체 이후 세계는 순식간에 급변했다. 그 때까지 세계를 지배해 왔던 이데올로기와 냉전구조는 붕괴되었고, 자본주의 체제가 승리하면서 정보의 해제와 금융시장의 글로벌화가 시작되었다. 종전에는 국방통신시스템이었던 인터넷의 보급으로 일반대중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도 일변했다. 경제의 자유화와 중국을 포함한 사회체제의 변화로 사람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졌으며, 물자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지구상 어디에 있어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시차는 있지만 전자테크놀로지 덕분에 세계가 동시에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글로벌리즘 시대의 인간들은 지역 및 국경, 습관, 언어, 종교를 넘어 상호교환 가능한 매체들 속에서 산다. 인터넷 덕분에 매체들의 경계는 사라져 세계는 평면화되고 획일화되었다. New York, Tokyo, Seoul, Beijing에서 스타벅스의 커피를 마시고, Amazon.com에 들어가 전 세계의 읽을거리를 다운로드하며,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즐기고, 음악과 영화를 다운받으면서 세계 어디서든지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글로벌화의 혜택으로 대다수의 현대인이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옷을 사며,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사고를 하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유일한 채널이던 미국의 지배가 종식되고, 테러와의 싸움으로 새로운 대립이 시작되었다. 세계 시장경제의 발전은 지역격차를 낳아 다수의 빈곤층이 출현했고, 인터넷을 이용한 국제범죄도 늘어났다. 결국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들은 이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살며, 이미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불행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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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슈야 이시다_무제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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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의 증대 ● 우리는 예술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급속히 진전되는 정보화 사회, 국제전의 증대, 광주 비엔날레를 위시해 부산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광저우 비엔날레, 칭다오 비엔날레, 싱가폴 비엔날레, 후쿠오카 비엔날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츠마리 트리엔날레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90년대부터 국제전이 급증한 것은 문화의 글로벌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민주화 운동과 국제전이 때를 같이 하고, 사람들의 이동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흐름을 타면서, 아시아에 자유를 가져온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문화의 국제화, 혹은 민주화는 앞에 언급한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증대에 의해,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세계화시켰다. 물론 지역 격차를 뛰어넘는 커뮤니케이션은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의 교환으로 가능해졌다. 팩시밀리나 전화, 편지와는 달리, 인터넷은 엑셀 수식과 PDF를 사용한 화상처리를 할 수 있으며, 비디오넷으로 만 배 이상의 정보를 순식간에 보낼 수도 있게 되어, 그 결과 세계는 수 초안에 확실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통신 속도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활 양식은 시간상의 이동개념에서 공간상의 이동개념으로 변화되었다. 시간에 대한 사고, 원근의 거리 개념을 소멸시켰고, 인터넷은 24시간 지구상에서 Google을 움직이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뿐만 아니라 휴대폰의 발달 또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한층 증대시켰다. 지구상에서 교신되는 커뮤니케이션이 눈에 보이는 전자파라면,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전자파가 작열하는 천체일 것이다. 매일 원폭이나 수폭 이상의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증대가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예술 작품 역시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그 역할이 바뀌어, 작품의 표현은 강도 높은 메시지를 지니게 되었고, 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향해 있으며, 사회환경의 문맥 안에서 작품을 제작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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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보 아베_벨런스_나무, 아크릴_190×100×8cm
사회와 개인을 맺는 것 ● 이처럼 글로벌화된 매체가 넘쳐나는 생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예술을 통해 세계의 존재방식을 더 사유해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에 네 명의 일본 예술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인간을 모티프로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과 마음의 균형(심정)을 테마로 하고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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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사사키_마리아8861_혼합재료, 아크릴_200×140×3cm
현재 New York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모요 도리미츠 ● 도리미츠의 작품 「Inside Track」 은 글로벌기업에 종사하는 기업가들,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기업전사의 모습을 한 오피스 워커 로봇(공업제품)이, 마루에서 네발로 기는 포복 자세로 전진한다. 이 작품은 기업의 최전선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샐러리맨을 전사의 모습으로 만들어, 전장(회사내부)을 이동한다. 어디에나 있는 듯한 그 전사들, 유머러스하며, 시니컬하게 보이는 Mr.Mark, Mr.Lee, Mr.Gunter는 비지니스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광주 비엔날레(2004)에 출품한「Horizons」시리즈를 한층 발전시켜, 장소를 비지니스 오피스 안으로 옮겨 상황을 전개시키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백 개 이상의 슈트를 입은 병사인물상, G.I.Joe들이 중동지역에 매장된 오일을 둘러싼 쟁탈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 백 개의 샐러리맨 상들은 단 세 개의 배터리의 힘으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싸우는 전사(회사원)가 벽에 부딪치거나 백색의 빌딩을 들이받아 건물을 부수면서 전진해 간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비지니스는 중단된다. 넥타이는 단정히 매고 있으면서 하반신은 느슨하게 질질 끄는 자세, 뒷모습은 관람객들을 비추면서 그들을 웃을 수도 없게 한다. 그들 덕택에 천연자원을 지니지 못한 일본과 한국의 경제는 유지되며, 중동 원유의 혜택을 입어 우리의 매일의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우리들은 비행기나 차에 타면서, 석유를 원료로 한 천을 이용한 옷을 입으면서, 생활의 전부를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백개의G.I.Joe들에게 성원을 보내고 싶은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도리미츠는 1990년대 도쿄에서 「미야타 지로」라는 샐러리맨 로봇을 만들었다. Made in Japan 의「미야타 지로」역시 일본에서 포복 전진하며 도쿄의 거리에서 활약한다. 사회적 지위를 지닌 기업전사 Mr.Mark, Mr.Lee, Mr.Gunter 그리고 MR.미야타는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살아 남는 아버지상이 되어 귀염성스런 기분과 증오스러움이 섞여, 비극의 드라마가 되어 우리에게 호소해 온다. 틀림없이 한국의 관객들도 이 로봇 기업가들을 보고 웃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아프간 인질사건은 이와 같은 중동의 유전 쟁탈전에서 비롯된 비극이었으며, 민간인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비극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연일 뉴스를 지켜보았던 것이다. 도리미츠가 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비극의 아버지 상이긴 하지만, 일벌레 인간이 인간적이고 씩씩하게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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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요 토리미슈_인사이드 트렉_가변설치_2004
데츠야 이시다 ● 데츠야 이시다는 2005년 도쿄 근교의 레지던스 타운인 마치다시에서 오다큐 전철 건널목 사고로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주기 추도 전람회에서 필자가 NHK일요 미술관의 책임프로듀서에게 소개하였고, 그 후 45분길이의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화집(求龍堂출판)은 3만부가 팔렸으며, 많은 젊은 관객층이 이시다의 작품을 보고 오열했다. 그가 일상을 그린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생의 슬픔과 괴로움이라고 할 비통함을 안겨주었다. 이시다의 슬픔은 개인적인 비극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연일 보도되는 젊은 층의 이지메, 살인사건, 자살 등이 현대인의 비극을 보여준다. 전국 각지의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사건은 그치지 않는다. 소년의 목을 잘라 교문 앞에 놓는 범죄, 소년의 버스 하이잭, 인터넷에 살인을 예고하고 게임 감각으로 친구를 살해하고는, 다시 게임과 같이 리셋트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소녀도 있었다. 개인의 의사를 억누르는 획일화된 교육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비극을 접할 때 마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학력 우선의 사회, 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타자를 부정하는 것이리라. 행복도 불행도 사회의 제도에 의해 결정되는 집단 논리가 개인을 말살해, 그 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자는 부정되고 만다. ● 이시다의 작품 「Analysis」(분해-1999)는 볼트로 만들어진 인간으로 작가 자신이다. 볼트는 대량 생산되는 공업 제품이다. 사회의 인간들이 부품처럼 보였는지, 부품으로 이루어진 그의 집안은 황폐해진 비참한 양상을 표현한다. 도리미츠의 로봇역시 엘리트라고 불리는 고학력의 사회인을 상정하며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대량생산의 공업제품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충족될 수 없는 인간사회의 환경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이시다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소년 살인 사건의 뉴스를 들었을 때나 이지메로 자살한 소년 소녀들의 불행을 알았을 때의 그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대다수의 현대인이 매일 겪는 인간의 슬픔, 애처로움과 닮은 감정이었다. 특히 현대 일본사회에서는 회사나 학교와 같은 조직 안에서 관리되고 폐쇄된 개인주의가 철저히 지켜져 만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종교심이 희박해진 현대사회에서는 마음의 연대를 구할 수도 없이, 부모자식의 연대도, 사람들 사이의 신뢰 관계도 허약해져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부재화하는 자기” 혹은 “투명한 존재”임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현대일본사회가 일으킨 집단적 병폐인 것이다. 불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무너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이며 실감(현실)일 것이다. 이시다가 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자신을 향한 또 한 사람의 내면의 타자에 바쳐진 경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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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슈야 이시다_브레이크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1.8×73cm_1999

뉴보 아베 ● 뉴보 아베의 「self-portrait: 자화상」는 목조로 제작된 작품이다. 검은 색으로 칠한 평균대는 학교 체육시간에 쓰던 체육기구를 생각나게 한다. 그 평균대 위에 본인과 같은 인물이 균형을 잡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이다. 검은 색으로 칠한 학교 평균대는 인간사회의 제도를 암시하면서, 불안정한 미지의 세계를 예측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베의 작품은 이시다와 같이 불안한 자신의 자화상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얼굴에는 검은 붕대가 감겨있어 표정을 알 수도 없다. 보이지 않는 얼굴이 관람자를 한층 불안하게 한다. 평균대 위에서는 미래를 볼 수도,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으며, 양 팔을 올리고 평균대(사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떨고 있는 듯 하다. 발끝은 극명하게 새겨져 착지점이 안정감 있게 보인다. 이 작품은 머리에 또 하나의 얼굴을 가진다. 관객은 볼 수 없지만 작품 위에서 보는 시점을 상정해 만들어진 얼굴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그 시선을 아프도록 느낀다. 아래로부터 쳐다보면 높이 나는 새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보는 사람에게 균형을 요구한다. 같은 경향의 작품 「Balance」도 마찬가지로 균형을 잡은 자화상과 같지만, 잘 보면 머리가 없다. 양팔을 벌린 머리가 없는 소년과 같은 형태가 십자가의 그리스도상과 같다. 한쪽 구두는 벗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의 구두 한 짝을 어딘가에 감추었음에 틀림없다. 이지메를 당한 소년처럼 괴로워 보이기도 한다. 아베가 추구한 커뮤니케이션은 사회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과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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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보 아베_자화상_나무, 아크릴_100×180×60cm

리카 사사키 ● 리카 사사키의 작품 표현은 도리미츠, 이시다, 아베의 작품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앞의 세 작가의 작품의 배경으로, 세 사람의 신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뇌, 사람들의 감정이나 이성적 감각을 조작하는 뇌(=마음)를 제시했다. 사사키는 자신의 뇌를 스캔해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을 한다. 실리콘으로 뇌를 만들어 찍어 확대하거나, 변형시킨 사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전시에서 마음의 문제를 물으면서 마음의 소재를 생각해 본다. 대뇌와 소뇌, 우뇌와 좌뇌와 같이 뇌는 몇 개의 세포로 연계되어 감정 조작을 신호로 바꾸어 전달한다. 슬픔이나 기쁨이 신호가 되어 마치 통신 시스템과 같이 감정을 전한다. 뇌세포는 시각을 이미지로 상상하거나, 언어를 기억하거나, 계산을 처리하거나, 상황을 구성하고 편집하는 기능 등, 그 어떤 슈퍼컴퓨터에 못지 않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사키의 작품은 인간의 처리 능력을 지닌 뇌, 복잡하고 단층이 몇 겹이나 겹쳐진 뇌 그 자체를 보여준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우리가 매스미디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화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사사키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자신을 컨트롤하는 기능, 뇌 자체가 감정을 지닌 인간적인 부분에서 기능만을 시각화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들 자신의 뇌(=마음)가 시스템화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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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Dis-communication ● 이번 전시의 컨셉인Dis-communication은 현대사회에서 글로벌화에 따라 일어나는 소통의 부재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메시지이다. Dis-communication은 통신수단의 발달과 미디어의 진화로 인해 정보화 사회 속에서 사라져가는 소통, 인간의 감정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슬픔, 괴로움, 기쁨, 유머, 냉소가 교차하는 인간 마음의 정보,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는 소통의 문제를 다룬다. 이 네 명의 예술가들에게 공통된 태도와 의식은 냉소와 유머로 이 현대사회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그들과 같이 도시에 사는 의식을 가진 가해자이며 피해자이기도 한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신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그들의 통찰력은 사회라는 인간세상에서의 개인, 또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 세계 속에 속한 한 개인과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묻는다. 이번 〈Dis-communication〉전이 일본의 예술가들을 모두 한국에 소개하는 전시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이들도 역시 글로벌라이제이션 속에서 또 인터넷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는 예술가들의 메시지는 한국인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의식으로서의 소통의 기능을 할 것이라 믿는다. ■ 유조 우에다 (김혜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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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nstory Art&Story
TAG 미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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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07.10.27 02:3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전시 설명과 함께 "모모요 토리미슈" 작품 움직이는 것까지 보시고 오세요.

토탈미술관
http://www.totalmuseum.org/ 
2007_1009 ▶ 2007_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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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백야의 하늘아래 바이킹과 인어공주의 나라, 덴마크의 비디오 아트를 만나다! ● 〈미묘한 속삭임〉展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소개되는 본격적인 덴마크 비디오아트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정부에서 지원하는 스테이트 비지트 프로그램(State Visit Program)의 결과물로, 지난 6월 토탈미술관 큐레이터가 직접 덴마크를 방문하여 덴마크가 자랑하는 비디오 아티스트들을 만나 그들과 작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토대로 기획되었습니다. 북유럽에 위치한 덴마크는 우리에게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나 바이킹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덴마크라는 나라는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미묘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밤 열한시가 되도록 환한 백야의 여름이나, 오후 4시만 되어도 어둑한 밤거리,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면서도 초현대적인 감수성이 남아있는 곳. 이렇듯 다양한 덴마크의 색상은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어딘지 무뚜뚝한 듯 하지만, 아주 따뜻한 사람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변화되는 세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 고독에 대한 반성 등 오늘날 덴마크가 안고 있는 고민들이 작품 속에 녹아 있습니다. 언뜻 다르게 비춰지는 이러한 주제의식들이 신비하리만치 비슷한 목소리로 울려 펴지는 것이 덴마크 비디오 아트 작품들의 특징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화면 구성, 환상적인 느낌마저 자아내는 적막함, 낮은 목소리.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소리 높여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내면을 향해 침잠해 들어감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향한 침잠이 결코 관객을 무겁고 어둡게 끌어내리지는 않는다는데, 덴마크 비디오 작품들의 특색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소란하거나 씩씩하지 않지만, 묘하게 사람을 사로잡는 그들의 작품은 그래서 동화를 닮아 있기도 하고, 쉽게 돌아설 수 없는 백야의 매혹적임을 닮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거친 바다를 항해했던 바이킹의 이상처럼, 자신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이 기묘하게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덴마크 비디오 아트의 매력입니다.

아카이브 룸에서, 조금 더 천천히 깊이 있게 만나는 덴마크 비디오아트 ● 〈미묘한 속삭임〉은 전시와` 병행하여 아카이브 룸을 운영합니다. 아카이브 룸에서 관람객들은 전시에 소개되지 않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관련 자료들을 좀 더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덴마크 소개 및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접근을 통해 작가와 작품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는 국가적인 배경과 그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 대해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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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온파이어_ARoS 온 파이어_2007〈ARoS 온 파이어>는 덴마크 출신의 타이라 힐덴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피오 디아즈로 구성된 시티온파이어 프로젝트 팀이 스칸디나비아 최대 규모의 미술관인 아르후스 ARoS미술관에서 한 프로젝션 퍼포먼스이다. 2007년 1월 어둠 속에서 이 성공적인 미술관이 불타오르는 장면은 사실 미술관 외벽에 투사된 화염 이미지였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위대한 작품을 보관하는 미술관이라는 건물이 가지고 있는 유약성과 시간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한 편 아르후스 시(市)의 익숙한 이미지들을 불태우는 은유적인 행위로 읽히기도 하였다. 작가는 〈ARoS 온 파이어>가 예술의 전통적인 개념을 파괴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여기에서의 불길은 정화의 과정을 위한 플랫폼이며,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통해 확장된 예술의 장 안에서 예술이 다시 태어나 새로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치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처럼.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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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 콕_접근_2005다가서다(접근)> 비디오 설치 작품은 700년 전 이태리에서 쓰인 단테의 『신곡』에서 텍스트를 빌려왔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신곡』은 인간의 삶의 의미나, 설명할 수 없는 혹은 만질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갈구하는 이야기이다. 작품은 천국 의 첫 14구절을 암송하는 목소리에서 시작하여, 같은 구절을 수화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단테가 자신에게 여행하면서 보았던 것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간절하게 갈구하는 장면인 이 구절을 목소리와 수화, 즉, 청각적인 언어와 시각적인 언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해 보여준다. 관객은 이 서로 다른 두 언어에 사로 잡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맺는 관계의 근본적인 상황과 민감하게 마주하면서 분명하고 정확한 의사소통이라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글. 마이 미스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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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태커_감정의 풍경_2005〈감정의 풍경>은 파편이라는 관점에서 형식과 내용을 조작하고 있다. 야콥 테커는 마치 영혼의 층위를 담고 있는 것처럼, 키드 레이어스(keyed layers) 합성 기술을 사용하여 인공적이고 꿈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었고, 그 안에 아주 많은 쌍을 이루는 인물들을 놓았다. 그것은 너무나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어서 그것을 정리정돈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영혼의 표상과도 같다. 그런가 하면 〈감정의 풍경>은 도시와 농촌,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서 작동하기도 한다. 한 남자가 자신의 영혼 안을 들여다 보고는, 어수선하게 어지럽혀진 자신의 영혼을 깨끗이 정리하려고 한다. 다양한 쌍들이 서로를 대면하고, 분열된 퍼스널리티를 하나로 결합하려는 시도를 상징하는 합창을 한다. 그 중 한 명은 길- 잠재의식과 의식의 경계-을 건너고, 다른 한 명-좀 더 공격적이고 산만한 영혼의 측면-이 운전하는 차가 거리를 달려갈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조화는 파괴되고, 이야기는 새로운 결말 구도 속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마야 드랭(Maya Deren), 루이스 버뉴엘(Louis Buneul)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에 대한 오마쥬이다. 글. 카산드라 웰렌도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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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네트 일러스_유령선수들_2000-2003〈유령 선수들>은 작가가 직접 소스를 구해 수정하거나 화면 속의 인물들을 지워버리고 그림자만 남겨둔 다양한 장면이나 영화 속 시퀀스로 구성된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선수는 지워지고 그림자만 남아서 축구 경기를 펼친다거나, 스키어는 없이 그림자들이 활강하는 스키장면, 카우보이와 그림자와의 난투와 같은 장면들이 있다. 작품들 속에는 부재와 유머, 시적인 것, 놀라움을 아우르는 다양한 표현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CBA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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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나 돔커_잠자는 사람들_2006〈잠자는 사람들>은 실제 공항에서 촬영되었다. 카메라는 공항 입구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승객들과 짐을 가득 실은 트롤리들을 따라서 천천히 움직인다. 화면 속 공간에는 많은 사람들과 짐들이 혼잡하게 널려 있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찾을 수 없다. 모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은 최근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기 위해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현상처럼 나타난다. 돔커는 이 같은 상황을 거의 정지한 듯한 세팅 속에서의 카메라의 이동을 통해 보여주며, 이렇게 제작된 〈잠자는 사람들>에는 어느덧 장소성과 시간성이 지워져 있다. 작가노트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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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튼 뒤스고_또 다른 문의 현존_2007몰튼 뒤스고의 영상작품들은 문화적 정체성과 복합적인 레이어의 재현 시스템을 탐구한다. 작가는 작품 속 등장인물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특징적이게도 관객을 질문의 중심부에 세워 놓고 관객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관점, 문화적 이해에 근거해서 대답하기를 요구한다. 최근작인 〈또 다른 문의 현존>에서도 뒤스고는 특유의 방식으로 문화적 정체성이나 국민성, 현대적인 정형 등에 관한 그의 주제들을 특유의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작품에는 같은 방에 살고 있지만, 서로를 볼 수 없는 파키스탄 남자와 미국 남자가 등장하는데, 이들이 동일인인지 아니면 두 개의 다른 문화에서 온 서로 다른 사람인지에 대한 답은 열려 있다. 그것은 관객의 선택의 몫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작가 노트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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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나 데보아 불_티볼리 엽서_2006〈티볼리 엽서>는 1843년 코펜하겐에 놀이 동산으로 만들어진 티볼리 공원을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서 촬영한 것이며, 이 작업은 시리즈로 진행하였다. 이 작품은 19세기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있던 건축가 티볼리가 유럽의 런던과 파리 같은 큰 도시들에서 당시 크게 유행하였던 동양적 이미지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했느냐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덴마크는 1864년 유틀란트 반도의 남쪽을 독일에 내어준 이후,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비 독일적” 정체성의 확보에 관한 운동을 개진하던 때였다. 당시, “동양”에 관한 개념은 국가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이와 같은 시기 티볼리는 “민족적 이주마차” 혹은 “식민주의적 전시”들을 다수 주최한 바 있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는 건축가와는 달리 이 놀이 동산은 아직도 즐거워 보이며, 덴마크의 식민주의적 역사의 흔적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작품은 티볼리를 기록하는 16미리 영화로 먼저 만들어 졌으며, 화면은 마치 엽서를 들낙날락 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사운드는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의 음성과 오락적인 기능과 동양적인 이미지들을 아주 잘 반영하여 만들어진 식민주의적 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티볼리의 건축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제작된 기록물들의 합성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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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레케_내일은 오늘이다_2006 니콜라이 레케의 비디오 설치 작품은 〈내일은 오늘이다>는 피지 섬에서 촬영되었다. 작가는 피지섬에서 날짜변경선을 촬영했는데, 전시장에서는 두 개의 병치되는 프로젝션 화면을 통해 날짜변경선의 서로 다른 두 영상이 나란히 투사된다. 이를 통해서 관람객은 동시에 이틀을 지각할 수 있는 시각적 공간, 물리적인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자, 원칙적으로 “오늘들”은 없이 내일들과 어제들만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 노트 요약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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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필름메이커스(Netfilmmakers)넷필름메이커스는 넷 필름, 넷아트비디오, 디지털 아트를 위한 비영리 프로젝트 기관이다. 이들은 온라인 갤러리를 운영하여, 3개월마다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한다. 또한 시각 예술가나 영화 제작자들을 초청하여 주제에 부합하는 작품의 제작을 의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예술가들에게 브라우저 윈도우를 제공하고,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넷필름메이커스가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무료공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오픈 소스 갤러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넷 상에서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영호, 비디오 작품, 디지털 아트를 위한 영역을 개발하고, 탐구하며, 그에 대한 사용 방안을 개척하는 등 기존의 장르들이 가지고 있는 경계를 무너뜨려 갤러리를 찾은 방문객들/사용자들에게 새로운 형식의 비상업적인 현대적인 동영상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기제를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오픈소스 운동과도 닿아있다고 하겠다. ■ 토탈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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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미술,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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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line: The High Renaissance

르네상스 전성기에는 건축가 브라만테의 템피에토와 르네상스 전성기의 최고 3대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인간이라 불리 우는 천재로 모든 사물의 근본인 물, 불, 공기, 땅에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로서, 예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학, 의학 자연과학 등 다방면으로 창작활동을 보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b. 1452, Vinci, Republic of Florence [now in Italy]--d. May 2, 1519, Cloux, Fr.), Italian painter, draftsman, sculptor, architect, and engineer whose genius, perhaps more than that of any other figure, epitomized the
Renaissance humanist ideal. His Last Supper (1495-97) and Mona Lisa (1503-06) are among the most widely popular and influential paintings of the Renaissance. His notebooks reveal a spirit of scientific inquiry and a mechanical inventiveness that were centuries ahead of his time.

황금비율

르네상스의 천재.
르네상스적인 천재라고 일컫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름부터 생김새까지 성격과 능력까지 완벽한 사람.
(현대사회에 점점 이런 인간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타.)

그는 천재답게 다방면에서 능통했고,
그러다보니 길지 않은 생애에서
안타깝게도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으나,
중요한 소스를 현대 다양한 학문에 남기게 된다.


21세기는 컴퓨터가 최고의 자리이듯이 15~16세기 르네상스시대에는 단연 예술이 최고.         과학, 의학, 건축, 항공학 등에서도 활동하였으나, 그는 예술가이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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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ruvian Man
1492
Pen, ink, watercolour and metalpoint on paper, 343 x 245 m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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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of a Flying Machine. c.1486. Pen and ink on paper. Bibliotheque de l'Institut de France,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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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톨로메오 야고보 안드레아  유다  베드로 요한  예수  야고보 토마 필립보 마태오 유대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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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Supper

1498 (180 Kb); Fresco, 460 x 880 cm (15 x 29 ft);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Refectory), Milan       마태복음 26장 21~22절        요한복음 13장 23절~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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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한 명이 그를 배반할 것이라고 말하자  제자들이 놀라며 그게 저입니까? 하고 묻는 장면을 묘사, 운동감을 일으키게 한 질문과 제자들의 반응으로 보여진 표정과 몸짓. 각 사도들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보고 그가 누구인지까지도 알 수 있는 완벽한 묘사.
<성찬식에서 예수께서 빵을 들어 나누어 주시며 이것이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 그들에게  이것이 나의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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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Joco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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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Mona Lisa (1479-1528), also known as La Gioconda, the wife of Francesco del Giocondo; 1503-06 (150 Kb); Oil on wood, 77 x 53 cm (30 x 20 7/8 in); Musee du Louvre, Paris

This figure of a woman, dressed in the Florentine fashion of her day and seated in a visionary, mountainous landscape, is a remarkable instance of Leonardo's sfumato technique of soft, heavily shaded modeling. The Mona Lisa's enigmatic expression, which seems both alluring and aloof, has given the portrait universal fame.

놀라울 정도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이 모나리자를 그토록 신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동양산수화 같은 배경에 드러난 산과 물은 여성성을 상징하고, 
 생명 탄생의 물줄기를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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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ms have been written about this small masterpiece by Leonardo, and the gentle woman who is its subject has been adapted in turn as an aesthetic, philosophical and advertising symbol, entering eventually into the irreverent parodies of the Dada and Surrealist artists. The history of the panel has been much discussed, although it remains in part uncertain. According to Vasari, the subject is a young Florentine woman, Monna (or Mona) Lisa, who in 1495 married the well-known figure, Francesco del Giocondo, and thus came to be known as ``La Gioconda''. The work should probably be dated during Leonardo's second Florentine period, that is between 1503 and 1505. Leonardo himself loved the portrait, so much so that he always carried it with him until eventually in France it was sold to François I, either by Leonardo or by Melzi.

From the beginning it was greatly admired and much copied, and it came to be considered the prototype of the Renaissance portrait. It became even more famous in 1911, when it was stolen from the Salon Carré in the Louvre, being rediscovered in a hotel in Florence two years later. It is difficult to discuss such a work briefly because of the complex stylistic motifs which are part of it. In the essay ``On the perfect beauty of a woman'', by the 16th-century writer Firenzuola, we learn that the slight opening of the lips at the corners of the mouth was considered in that period a sign of elegance. Thus Mona Lisa has that slight smile which enters into the gentle, delicate atmosphere pervading the whole painting. To achieve this effect, Leonardo uses the sfumato technique, a gradual dissolving of the forms themselves, continuous interaction between light and shade and an uncertain sense of the time of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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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 and Child with the Infant John the Baptist and St. Anne
National Gallery, London
sketch for the Madonna and Child with St. Anne and John the Baptist, often identified as the Burlington House Cartoon. Leonardo's later treatment of the same subject (without John the Baptist) is in the Lou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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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
1510 (200 Kb); Oil on wood, 168 x 130 cm (5 1/2 x 4 1/2 ft); Musee du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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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rgin of the Rocks
1503-06 (140 Kb); Oil on wood, 189.5 x 120 cm (6 x 4 ft); National Galler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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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nevra de' Benci
c. 1474 (150 Kb); Oil on wood, 38.2 x 36.7 cm (15 1/8 x 14 1/2 in);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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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portrait in red chalk, circa 1512 to 1515.[1]
Birth name Leonardo di Ser Piero
Born April 15, 1452(1452-04-15)

Vinci, Florence, in present-day Italy

Died May 2, 1519 (aged 67)
Amboise, Indre-et-Loire, in present-day France
Nationality Italian
Field Many and diverse fields of arts and sciences
Movement High Renaissance
Famous works Mona Lisa, The Last Supper, Vitruvian 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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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o da Vinci. The Annunciation. Detail. c. 1472-1475. Oil and tempera on wood. Uffizi Gallery, Florenc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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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tnstory Art&Story
TAG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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