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Arts/Contemporary Art

로버트 인디애나

@artnstory 2010. 2. 24. 16:44

<로버트 인디애나 약력>

1928년 미국 인디애나 주 뉴캐슬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Chicago Art Institute)에서 회화와 그래픽을 전공한 후 1953년 장학금을 받고 에딘버러대학과 런던대학에서 수학하였습니다.

1954년부터 1978년까지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그의 고향인 인디애나주를 딴 로버트 인디애나로 바꿉니다.

본명은 로버트 클라크입니다.

 

<로버트 인디애나 미술사적 배경들>

로버트 인디애나는 생존하는 팝아트 작가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팝아트는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일어났던 미술 사조로서 추상표현주의의 엄숙성에 반대하고 TV나 길거리 표지판, 광고 등 일상적이고 대중적인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입니다.

당시 뉴욕은 미드타운에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가 주류를 이루는 반면 다운타운에서는 앤디워홀(Andy Warhol), 로이 리히텐스타인(Roy Lichtenstei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로 대표되는 팝 아티스트들의 그래픽을 이용한 미술이 시작되고 있는 때였습니다.

작가는 미술 공구들을 팔면서 자연스럽게 뉴욕 미술계와 친해지게 됩니다.

 

<영향받은 작가들>

엘스워스 켈리(Ellsworth Kelly),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등과 이웃으로 지내면서 그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엘스워스 켈리를 만나면서부터 하드에지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하드에지는 기하학적 도형과 선명한 색깔로 또렷하게 그리는 추상화의 한 경향입니다

엘스워스 켈리는마티스와 앨버스, 로스코가 다룬 색상들의 관계와 특성을 연구하여 색면덩어리를 간결하게 표현하여 강력한 시각적 주목을 이끌어내는 화면구성이 특징입니다.

재스퍼 존스와 인디애나 두 미술가 모두 표준적인 숫자들을 예술적 소재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존스가 숫자를 추상 표현주의적 회화에 포함시킴으로써 숫자 고유의 가치를 제한한 반면, 인디애나는 모든 회화와 조각에서 훈장처럼 숫자들을 똑바로 제시한다.

 

<작가로서의 첫발>

그의 작가로서의 첫 발은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의 Art Assemblage에 참여하면서입니다.

이듬해인 1962년에는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그의 작품인 The American Dream #1(1961)을 구입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로버트 인디애나는 점차적으로 팝아트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만들어 나가게 됩니다.

로버트 인디애나는 그래픽 형대로 숫자나 문자를 이용하여 디자인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직접성''가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러브>

그는 도시 고속도로나 뉴욕의 항구 등에 버려진 도시의 폐기물, 도로의 표지판, 카페에 걸린 재즈 공연 광고 등에 쓰인 화려한 색깔등에 착상하여 페인팅과 조각 작업들을 하였습니다.

사랑-Love”디자인의 색상 조화는 1930년대 자신의 아버지가 근무했던 전국적인 정유 회사, 필립스66(Phillips 66)간판을 상징하는 색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아버지 정유회사 간 판 색처럼 선명한 붉은색과 녹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색칠되었습니다.

뉴욕 맨하탄에 있는 것이 대표적케이스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시대에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인디애나 씨의 디자인은 수백만장의 카드와 신문, 간판 그리고 우표로도 제작되어 왔습니다.

이 단어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저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심정들을 표출한 것 같은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점은 팝아트적 의미를 되살려주고 의심할 바 없이 그가 성공적인 작가가 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스터>

브룩클린 브리지의 완공에 감명받은 시인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그렸다는 작품입니다.

 

<EAT,DIE>

또한, 민주적인 예술가라고 평가되는 인디애나. 까닭은 자신의 과거사를 바탕으로 우리의 기본적인 의사소통수단과 경험에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EAT, ERR, HUG그에게 EAT 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버지께서 아침을 드시다 돌아가셨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뭐 좀 먹었니?" 란 말이었다고 합니다.

ERRHUG는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수를 했어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감싸 안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1959년과 60년에 인디애나씨의 작품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 작품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것이였습니다.

먹다또는 죽다라는 단어들이 매우 밝은 색상의 스텐실 문자로 제작된 그림이 어느날 갑자기 예술 작품으로 등장했을때, 사람들은 그것은 예술작품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즉각적이고도 생생한 호소력을 나타냈습니다.

 

<YIELD>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들은 미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또는 인류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평화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선명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담고 있는 이 시리즈 형식의 작품들의 한 가운데에는 전세계적으로 평화를 상징하는 영어 알파벳 “Y”자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YieldY를 형상화한 표시였던 것입니다.

YIELD"양보" 라는 뜻으로 교통 표지판에 많이 쓰입니다.

이 작품은 71년 작으로 베트남 전, 닉슨 대통령, 인종 차별 등에 반대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평화"를 구현하자는 주제 의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형제의 정신으로 서로 양보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 최근작 YIELD시리즈는 20019-11 테러 공격과 이라크 전쟁으로 부터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인디애나씨는 이 작품들을 설명하면서, 전반부의 간판들에서 나타나 있는 절망감은 희미한 희망으로 향하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Y”자가 거꾸로 뒤집어져서 사실상 절망속에 가라앉아 있는 듯한 형태의 작품은 특별한 절망감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절망과 슬픔으로 인한 절망감을 이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우리가 소리를 지르거나 고함을 쳐서 현재의 절망감을 충분히 발산해 낸다면, 평화라는 아주 특별한 것을 다시 소생시킬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감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숫자>

작가는 1978년 그의 전속 갤러리였던 드니스 르네 갤러리가 뉴욕에서 철수함에따라 뉴욕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접게되었습니다.

이후 메인(Maine)주의 바이날하벤(Vinalhaven)에 거주하면서 몇몇 프로젝트를 계속하면서 1980년에 그는 10개의 숫자를 조각으로 발전시키기에 이릅니다.

숫자 0부터 9까지의 작품은 자신이 부모님을 따라 여러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그의 마음에 숫자로 각인되었던 것을 작품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숫자작품 하나하나에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숫자 1은 빨강과 초록으로 인간의 출생을 상징하며, 2는 파랑과 초록으로 유년시대, 3은 오렌지와 파랑으로 어린시절,4는 빨강과 노랑으로 사춘기,5는 파랑과 하양으로 일생의 최상을 향함, 6은 빨강과 초록으로 일생의 최상시대,7은 파랑과 오렌지로 인생가을의 초기,8은 빨강과 브라운으로 가을을 상징합니다.

9는노랑과 검정으로 교통부호중 위험표시와 같으며, 마지막 0은 회색의 색조로 죽음을 뜻합니다.

 

인디애나가 두 자리 숫자를 만들지 않는 이유로는 단순히 두자리 숫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트뉴스매거진(ArtNews)의 크리틱인 바바라 매가덤 (Barbara MacAdam)그래픽적인 요소로써의 팝 아트, 동시에 그것이 가지는 깊은 감성은 팝적이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준다라고 평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