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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History of Arts/Middle Age 2020. 4. 27. 21:54 |
 

중세시대는 311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초기 기독교 미술인 비잔틴 미술과 그리고 로마네스크와 고딕미술로 전개된다. 중세 문화적 주도권은 그리스, 터키에서 점차 북유럽으로 옮겨지고, 기독교가 내세의 구원을 중요시하여 영혼의 표현에 치중했다. 그러면서 그리스와 로마의 누드는 사라지고 이 시기 미술은 종교의  교리 (가르침)을 널리  쉽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비자틴 미술은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후의 지중해 동부 예술을 일컫는다. 공공예배장소로 바실리카(큰 회당)를 만들고, 종교적 주제를 다룬 모자이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집트인들처럼 엄격한 규칙에 의해 그려진 후광을 두룬 성상화(Icons)는 오래된 전통에 의해서 신성시된  틀에 박힌 유형이었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 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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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예수> 1280년경, 제단화, 콘스탄틴노플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됨. 목판에 템페라,  81.5x49cm, 워싱턴 국립미술관,  (멜론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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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바실리카: 산 아폴리나레 교회당>, 530년경, 라벤나 클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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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소피아(성스러운 지혜)는 로마의 거대한 스케일과 동방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융합시킨 성당이다. 6세기말의 대교황 그레고리우스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책이 해 주는 역할을, 그림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모든 미술의 주제는 기독교에 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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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주교의 입장>
<톄오도라 황후와 그녀의 시종들>산 비탈레 5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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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물고기의 기적> 520년경,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바실리카의  모자이크, 라벤나.
그리스도가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였다는 성경 이야기.
mosaic 로 교회 내부를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 배경은 황금빛 유리조각.
교회가 명확성을 강조하므로 단순하게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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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아담과 이브> 1015년경, 힐데스하임 대성당의 청동문 부조 부분.

<사도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 1000년경, <오토 3세의 복음서>의 한 페이지, 뮌헨 바이에른 국립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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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네르 반 후이, <놋쇠 세례반>, 1107~18년, 87cm, 성 바르톨로메오 교회, 벨기에 리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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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의 성 트로핌 대성당의 정면 1180년경 남프랑스

로마제국 붕괴 이후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는 로마네스크는 ‘로마와 같은’ 이라는 뜻이다.
로마의 개선문의 원칙을  상기시켜준다.  이 교회는 지상에서 최후의 심판날 승리의 여명이 밝을 때까지 암흑 세력과 싸우고 악의 공격에 대해서 피난처를 제공하는 전투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 로마네스크 교회는 적당한 높이에 수평적이고 둥근아치와 비교적 단순하고 엄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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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파눔이라고 불리는 현관윗부분에는 성서에서 유래된 성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 성마태오를 상징하는 천사, 성요한을 상징하는 독수리, 성루가를 상징하는 황소가 그려져 있다. 에스겔은 인간과 사자와 황소와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네 가지 동물들이 운반하는 하느님의 왕좌를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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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부에서 시작된 고딕양식의 원리는 첨형아치, 창의 트레이서리 장식, 스테인드글라스로 이우러졌으며, 육중하고 세속적이고 단조로운 것은 모두 다 제거되었다. 1165~1250년 파리의 노트르담(우리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은 물질세계를 초월한 별세계의 신비를 이해하고 하늘의 영광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대표적인 고딕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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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드 뤼자르슈 <고딕 건축 내부 : 아미엥 대성당의 신랑>, 1218~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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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성당의 발전사를 보면 밝은 빛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성당의 벽은 종교적인 교훈을 담은 커다란 색채유리로 표현되어있다. 이러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정수는 1248년 생샤펠 성당에서 최고점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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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hic sculpture, late 15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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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서터 대성당 1350~1400, 장식적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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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도제궁 1309년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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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e Martini (1285–1344). Dark themes and high emotion were increasingly pronounced in late Gothic art.



Gothic painting

Painting in a style that can be called "Gothic" did not appear until about 1200, or nearly 50 years after the start of Gothic architecture and sculpture. The transition from Romanesque to Gothic is very imprecise and not at all a clear break, but we can see the beginnings of a style that is more somber, dark and emotional than in the previous period. This transition occurs first in England and France around 1200, in Germany around 1220 and Italy around 1300.

Painting (the representation of images on a surface) during the Gothic period was practiced in 4 primary crafts: frescos, panel paintings, manuscript illumination and stained glass. Frescoes continued to be used as the main pictorial narrative craft on church walls in southern Europe as a continuation of early Christian and Romanesque traditions. In the north stained glass was the art of choice until the 15th century. Panel paintings began in Italy in the 13th century and spread throughout Europe, so by the 15th century they had become the dominate form supplanting even stained glass. Illuminated manuscripts represent the most complete record of Gothic painting, providing a record of styles in places where no monumental works have otherwise survived. Painting with oil on canvas does not become popular until the 15th and 16th centuries and was a hallmark of Renaissanc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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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중세에는 타피스트리가 등장한다. 이 타피스트리에 보이는 꼬리를 치켜 올린 채 앉아있는 유니콘은 부활한 예수를 상징하고, 석류나무는 풍요 다산과 교회의 번영을 상징한다.

<린디스판 복음서>의 한 페이지, 698년경, 런던 대영 박물관.
<Lindisfame Gospels>의 한 페이지.  서로 뒤엉켜 있는  용과 뱀들로 이루어진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풍부한 레이스 문양으로 된 십자가이다.    다양한 문양이 엄격하게 대응하며 디자인과 색채의 구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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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09.09.29 08:3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중세는 그리스로마의 화려한 조각, 누드는 모두 사라지고, 금박 도색, 복잡한 문체, 타피스트리, 모자이크, 스테인드 글라스, 등 장식적이고 화려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Wnvp2JGCtk&feature=share&list=TLbOAgwsNQGFA 

 

International Gothic Style

By the end of the 14th century, the fusion of Italian and Northern European art had led to the development of an International Gothic style. For the next quarter of a century, leading artists travelled from Italy to France, and vice versa, and all over Europe. As a consequence, ideas spread and merged, until eventually painters in this International Gothic style could be found in France, Italy, England, Germany, Austria and Bohemia.


Masters of illumination

The ancient art of book illumination was still the prevailing form of painting in France at the beginning of the 15th century. It reached new heights, however, in the work of the three Limbourg brothers, Pol, Herman, and Jean, exponents of the International Gothic style.


They came from Gelderland, a province of the Netherlands, but worked in France. They were the only other Gothic painters to take such orderly joy as that shown by Ambrogio Lorenzetti in the city and its environment, its people, and its rulers. The Limbourg brothers all died suddenly in 1416, probably of the plague.


The Limbourgs' joint masterpiece, Les Très Riches Heures, was commissioned by the wealthy and extravagant manuscript collector, the Duc de Berry. Les Très Riches Heures is one of a genre of 15th-century illustrated prayer books known as ``book of hours''. The ``hours'' were prayers to be said at one of seven hours of the day. A book of hours would naturally contain a calendar, and this became the opportunity for a display of the illuminator's talent. Sadly, this particular example was unfinished at the time of the Limbourgs' and the Duc de Berry's deaths.


Each month is marked by an enchanting scene, usually showing appropriate seasonal activities. In August, we see courtly lovers riding to hunt with their falcons, while the great white ducal castle gleams in the distance and the peasant swim happily in the winding stream. The blue upper part of the painting shows an astrological hemisphere. With its mixture of courtly refinement and everyday reality, this miniature is representative of many in the book.


The Garden of Eden was painted separately from the rest of Les Très Riches Heures and inserted into it later. It is a great enclosed circle showing the world as it was intended to remain before Adam and Eve's fall from grace. The whole story of the loss of Eden and human self-will is set graphically before us. Adam and Eve are finally ejected from the lush greenery of Eden unto a dangerous rocky shore. The Limbourgs' consciousness of tragedy is no less acute for being so chivalric in its manner. For all their elegance, they are as aware as all great artists that pain is our human lot.

<메리 여왕의 기도서>1310년경 에 이은

부르고뉴의 한 부유한 대공이 랭부르 형제의 공방에 주문해서 만든 기도서에 붙은 달력  <베리 공작의 기도서>1410년경. 샹티이 콩데 미술관



January  1월 염소,

The month of giving gifts (a custom which seems to have died out now). Jean de Berry himself can be seen on the right, wearing the brilliant blue robe.

선물을 주는 달.

오른편에 빛나는 푸른 의복을 입은 베리 공작이 , 왼편에는 염세가(은둔자),

 Dans certaines familles, on ne celebrait guere Noel, bien que certains soient catholiques: on donnait un cadeau chaque annee qu'on appelait les etrennes. Ce mot remonte a l'usage Romain de par lequel le patron devait offrir une subside annuelle a ses clients. Il est possible que la television ait donne le dessus a la fete de Noel sur l'epiphanie. (comment from mmurphy@ernsty.co.uk)

February  2월 물병,

Winter in a peasant village. The inhabitants of a farm are shown warming themselves by the fire, while in the background daily life - cutting wood, taking cattle to the market - goes on as normal.

겨울의 한 농가.

집 벽을 제거하고 실내풍경을 전하고 있다. 눈 덮인 풍경과 함께. 전면에 푸른 의복을 입은 귀부인은 불길에 다리를 드러내기 위해 치마를 들어올리고있다. 난로를 쬐고 있는 농부, 이것은 화가가 경험한 겨울을 보여주고 있다.


March  3월 물고기

The year's first farm work, sowing and ploughing and suchlike. The chateau in the background is that of Lusignan, one of the Duc's favourites.

3월의 전통적인 일은 포도를 재배하는 일. 한 해의 첫 농부의 일.

길 교차로에 4개의 장면이 경계 짓고, 고딕 작은 건축물을 기념탑이라 부른다.

 

April   4월 산양,

The arrival of spring, hope and new life - the grass is green and a newly betrothed couple are exchanging rings in the foreground, accompanied by friends and family. The chateau is another one of the Duc's, that of Dourdan.

꽃을 수확. 봄의 시작. 희망과 새 생명. 잔디는 초록색.

왼편에는 약혼식 귀족 그룹, 우아한 두 여인이 잔디밭에 몸을 구부리고 있다. 벽으로 둘러싸인 과수원과 오른편에 장식무늬 건물의 투시원근법

May   5월 황소

The May jaunt, a pageant celebrating the "joli mois de Mai" in which one had to wear green garments known as livrée de mai. The riders are young noblemen and women, with princes and princesses being visible. In the background is a chateau thought to be the Palais de la Cité in Paris.

산책.

왕자와 공주들과 젊은 귀족과 여인들. 붉은 안장과 회색말, 푸른 의복의 사람은 젊은 시절의 베리공작의 모습. 어린개들로 암시. 녹색드레스의 세부인은 5월 1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관례대로 밝은 녹색을.


June   6월 쌍둥이

Harvest time - the peasants are mowing the meadow in unison, with the Hotel de Nesle, the Duc's Parisian residence, in the background. The building on the right is the Chapelle Royale, which is unchanged to this day.

수확시간, 풀 베어 말리기.

센느 강.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쓴 모자와 삼각숄에 의해 태양이 매우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음이 분명하다. 예술가들은 세밀한 작은 사람들로써 건축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July   7월 게

More of the harvest; the sheep are being shorn and the hay is being reaped. The chateau behind them is that which formerly stood on the Clain at Poitiers.

더 많은 수확. 양들의 양털깍기,



August   8월 사자

The month of hawking; the nobles, carrying falcons, are going hunting while in the background peasants are harvesting and swimming in the river. Behind them is the Chateau d'Etampes.

매사냥. 밀 두드리기.

베리공작을 위한 젊은 영주의 짝?  멀리서도 빛나는 크고 하얀 성. 농부들이 미역 감고 수영하고 있다. 적어도 한 명은 여자?


September   9월 처녀

Probably the most famous of the calendar images. The grapes are being harvested by the peasants and carried into the beautifully detailed Chateau de Saumur.

포도 수확.  가장 유명한 달력 이미지.


October   10월 천칭

Tilling and sowing are being carried out by the peasants, in the shadow of the Louvre - Charles V's royal palace in Paris.

파종,  세느강 좌측. 루브르 정면.


November   11월 전갈

This is the only calendar image executed by Colombe; the Limbourgs painted only the zodiacal tympanum above it. The picture shows the autumn acorn harvest, with a peasant knocking down throwing sticks to knock down the acorns on which his pigs are feeding.

도토리줍기.   도토리가 숙성하고 돼지고기는 더 충만하게 맛이 오른다.


December   12월 사수

In the forest of Vincennes, fabled for its game, a wild-boar hunt has caught a boar which is being torn apart by the boarhounds. In the background is the Chateau de Vincennes, long a residence of French royalty.

돼지 죽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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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 soleil levant
sunrise, sunset
Impression 으로 붙여진 이 작품으로 인하여 impressionism이라는 사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야외에서 그 순간을 포착해서 그리다보니,
순식간에 단숨에 그려 가까이에서 이 그림을 볼 때면 무엇을 그렸는지 형태를 알 수없고 물감만을 발라놓은 것 같은 그림이 인상주의 작가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 그림들을 멀리서 바라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사진과 거의 흡사하다시피한 완벽한 풍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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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ession, soleil levant (Impression, Sunrise)
1873 (210 Kb); Oil on canvas, 48 x 63 cm (19 x 24 3/8"); Musee Marmottan, Paris


Monet painted this picture of the sun seen through mist at the harbour of Le Havre when he was staying there in the spring of 1872. A sketch quickly executed to catch the atmospheric moment, it was catalogued as Impression: soleil levant when exhibited in 1874 in the first exhibition of the group (as yet described simply as the Soci??Anonyme des Artistes-Peintres). The word `Impression' was not so unusual that it had never before been applied to works of art but the scoffing article by Louis Leroy in Le Charivari which coined the word Impressionnistes as a general description of the exhibitors added a new term to the critical vocabulary that was to become historic. It was first adopted by the artists themselves for their third group exhibition in 1877, though some disliked the label. It was dropped from two of the subsequent exhibitions as a result of disagreements but otherwise defied suppression.

Monet's Impression was not in itself a work that need be regarded as the essential criterion of Impressionism, vivid sketch though it is. There are many works before and after that represent the aims and achievements of the movement more fully. Yet it has a particular lustre and interest in providing the movement with it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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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t, Claude
Coquelicots (Poppies, Near Argenteuil)
1873; Musee d'Orsay, Paris

*양귀비꽃*
모네의 이 작품은 행복해보인다.
풍경에 인물이 들어있다.
모자쓴 여인과 소녀의 모습이
햇살을 즐기러 나온 모녀가 아닐까?
하늘과 양귀비밭이 1:1 비율이지만
양귀비꽃과 인물로 인해 안정감있고 지루하지 않은 작품이다.

Monet, Claude: early works
Garden at Sainte-Adresse
1867 ; Oil on canvas, 98.1 x 129.9 cm (38 5/8 x 51 1/8 in);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햇살에 앉아 있는 노부부와 바다를 바라보는 젊은 부부.
바다와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보여진다...'끌로드 모네'(1840-1926)..

..그는 무척이나 그림을 빨리 그리는 화가였다고 한다..
..많은 인상주의 그림들이 그러하듯이..
..그의 작업은 대부분 화실이 아닌 야외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때마다 그는 하루만에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어느날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오늘 다 못그리면 내일 마저 그리면 되지않느냐고..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이 빛이..
.. 내일도 같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사람들은 가끔 내게 물어온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왜 매일 들고다니냐고..
..모네의 대답으로 그 질문의 답을 대신하려한다..
..내일은 비가 멎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내일이면 유리창에 저 빗물이 말라버릴지도 모르니까..
..내일은 그사람이 그 자리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내일도 오늘 같다면 사는게 너무 재미없을테니까..

..<내일은 오늘과 달라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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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 Lilies (The Clouds)
1903 (180 Kb); Oil on canvas, 74.6 x 105.3 cm (29 3/8 x 41 7/16 in);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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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lilies
1906 (190 Kb); Oil on canvas, 87.6 x 92.7 cm (34 1/2 x 36 1/2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His youth was spent in Le Havre, where he first excelled as a caricaturist but was then converted to landscape painting by his early mentor Boudin, from whom he derived his firm predilection for painting out of doors. In 1859 he studied in Paris at the Atelier Suisse and formed a friendship with Pissarro. After two years' military service in Algiers, he returned to Le Havre and met Jongkind, to whom he said he owed `the definitive education of my eye'. He then, in 1862, entered the studio of Gleyre in Paris and there met Renoir, Sisley, and Bazille, with whom he was to form the nucleus of the Impressionist group. Monet's devotion to painting out of doors is illustrated by the famous story concerning one of his most ambitious early works, Women in the Garden (Mus? d'Orsay, Paris; 1866-67). The picture is about 2.5 meters high and to enable him to paint all of it outside he had a trench dug in the garden so that the canvas could be raised or lowered by pulleys to the height he required. Courbet visited him when he was working on it and said Monet would not paint even the leaves in the background unless the lighting conditions were exactly right.

During the Franco-Prussian War (1870-71) he took refuge in England with Pissarro: he studied the work of Constable and Turner, painted the Thames and London parks, and met the dealer Durand-Ruel, who was to become one of the great champions of the Impressionists. From 1871 to 1878 Monet lived at Argenteuil, a village on the Seine near Paris, and here were painted some of the most joyous and famous works of the Impressionist movement, not only by Monet, but by his visitors Manet, Renoir and Sisley. In 1878 he moved to V?heuil and in 1883 he settled at Giverny, also on the Seine, but about 40 miles from Paris. After having experienced extreme poverty, Monet began to prosper. By 1890 he was successful enough to buy the house at Giverny he had previously rented and in 1892 he married his mistress, with whom he had begun an affair in 1876, three years before the death of his first wife. From 1890 he concentrated on series of pictures in which he painted the same subject at different times of the day in different lights---Haystacks or Grainstacks (1890-91) and Rouen Cathedral (1891-95) are the best known. He continued to travel widely, visiting London and Venice several times (and also Norway as a guest of Queen Christiana), but increasingly his attention was focused on the celebrated water-garden he created at Giverny, which served as the theme for the series of paintings on Water-lilies that began in 1899 and grew to dominate his work completely (in 1914 he had a special studio built in the grounds of his house so he could work on the huge canvases).

In his final years he was troubled by failing eyesight, but he painted until the end. He was enormously prolific and many major galleries have examples of hi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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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lilies, Green Reflection, Left Part
1916-1923; Orangerie, Paris

Monet, Claude
monet, Claude (b. Nov. 14, 1840, Paris, Fr.--d. Dec. 5, 1926, Giverny)
French painter, initiator, leader, and unswerving advocate of the Impressionist style. He is regarded as the archetypal Impressionist in that his devotion to the ideals of the movement was unwavering throughout his long career, and it is fitting that one of his pictures--Impression: Sunrise (Mus? Marmottan, Paris; 1872)--gave the group hi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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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  그들의 얼굴보다는 햇살속에 들판에 서있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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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색채의 관계, 양산위 빛과 투과한 빛의 차이, 둔덕 위 풀잎은  햇살이 비칠 때와 그림자 속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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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gas, Edgar
Rehearsal of a Ballet on Stage

*무대 위 발레 리허설*
드가의 발레 시리즈는 보기만해도 설레인다. 여름 파리 여행에서 보았던 오페라 하우스의 발레가 아름다운 백조들의 모습이었다면 드가의 작품에서 만나는 이 발레리나의 모습들은 꿈속의 천사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비롭다.
이 작품은 이번 오르세이에서 보았는데 크지 않으면서 레드 브라운계열의 흑백 느낌으로 마치 스냅사진과 같은 작품이었다.

La classe de danse (The Dancing class)
c. 1873-75 (140 Kb); Oil on canvas, 85 x 75 cm (33 1/2 x 29 1/2 in); Muse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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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gas, Edgar
La classe de danse (The Dancing class)
Degas
c. 1873-75 ; Oil on canvas, 85 x 75 cm (33 1/2 x 29 1/2 in); Musee d'Orsay, Paris

*발레학교*
발레 학교의 일면. 색색의 리본을 달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에서 밝고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높은 천장과 발레리나의 의상을 더욱 눈부시게 하는 것으로 보아 큰 창을 통해 많은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어린 소녀들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빛나게 한다. 캔버스에 오일로 그려져 있지만 밝은 분위기와 발레리나 의상이 주는 사각거리는 디자인과  예쁜 색상의 리본으로 인하여 마치 파스텔화를 보는 느낌이다.


Ballet Rehearsal
1875; Gouache and Pastel on canvas, 21-3/4" x 27"; George G. Frelinghuysen Collection, N.Y.

Dance Class at the Opéra
1872; detail; Musé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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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gas, Edgar
Four Dancers
c. 1899 (150 Kb); Oil on canvas, 151.1 x 180.2 cm (59 1/2 x 71 in);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여성인 내가 봐도 설레이는 장면이다.
흘러내리는 발레 의상을 손으로 여미고 있다.
특이한 구도로 당시 사진이 나온 후에 우연에 의한 이러한 사진 구도를 이용한 작품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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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gas, Edgar
L'etoile [La danseuse sur la scene] (The Star [Dancer on Stage])
1878; Pastel on paper, 60 x 44 cm (23 5/8 x 17 3/8 in);
Musee d'Orsay, Paris
*댄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비스듬한 시점에서 그렸다. 종이에 파스텔로 그린 것으로 뒤에 많은 댄서들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솔로 씬 인듯한 스냅 사진의 한 장면. 이 댄서는 마치 주인공으로 보인다. 파스텔로 그려서 발레 의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더 부드럽고 아름 답다.


Edgar Degas. Ballet Scene. c.1878-80. Pastel on monotype. Whereabouts unkn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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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hearsal
c. 1873-78 (120 Kb); Oil on canvas, 41 x 61.7 cm (18 1/2 x 24 3/8 in); Fogg Art Museum, Harvard University, Cambridge, MA


Dancers Practising at the Bar. 1876-77. Mixed media on canva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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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ar Degas
. Ballet Rehearsal on the Set. 1874.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Edgar Degas. Dance Class. About 1871. Oil on woo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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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13.03.25 11:1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드가의 작품은 그림의 구도가 카메라 구도로 약간 불균형하지만, 이런 대담한 구성이 발레리나의 극적인 움직임에 생동감을 더해준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듯한 비스듬한 시각은 오페라 극장 높은 층 가장자리에서 그들의 모습을 포착하여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seurat georges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86;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Oil on canvas, 81 x 120 in; Signed, bottom right; Art Institute of Chicago, Helen Birch Bartlett Collection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쇠라만의 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작품.
한가로운 오후 시간이 멈춘 듯한 정지화면이 이 작품에서 유독 더 강한 이유가 뭘 까?
은은 하고 아련함이 묻어나는 그만의 기법으로 인한 연유가 아닐까 싶다.
햇볕이 드는 잔디와 그늘진 잔디, 하늘을 가리운 나무들, 그리고 바다의 색들과 보색되는 붉은 색과 어두운 색의 사람들의 모습.
그것으로 인하여 자연에서 보여지는 산뜻함과 싱그러움이 한층 더 강조되고 있다.


Un dimanche apr?-midi ?l'Ile de la Grande Jatte
1884-86;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Oil on canvas, 81 x 120 in; Signed, bottom right; Art Institute of Chicago, Helen Birch Bartlett Collection

The question has been asked whether Seurat's great work should be regarded as the necessary outcome of Impressionist ideas or as deliberately anti-Impressionist, and an answer might be that it contains elements of both. In pursuing the analysis of colour, Seurat carried on, though in more systematic fashion, what Monet and Pissarro had been doing. The division of colour was scarcely new, though the primary colours were more scientifically defined by the range he based on the spectrum; but he added to this divisionism or pointillism an equally elaborate and scientifically considered treatment of line in order to attain a harmonious unity of composition, which was distinct from the Impressionist aim of suggesting light, atmosphere and movement.

The difference is more readily perceptible in a figure composition as here than in landscape. The men, women and children enjoying the sun in the public park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in the Seine have the sort of fixity that a moving film acquires when it comes suddenly to a halt; they are frozen in their various attitudes. As a preliminary, Seurat made a number of oil sketches on the spot in a free and indeed Impressionist style. The finished work was intentionally different. The technique used is so interesting that it is apt to gain exclusive attention. One becomes absorbed in the geometric order that Seurat has imposed on the scene and this certainly is an opposite value to that of Impressionism. Pissarro, Signac and other artists attracted by the pointilliste method were somewhat led astray by the assumption that it opened up a new prospect solely in terms of translating light into colour. The comparison that has often been made between the Italian master of the geometrically-conceived composition, Piero della Francesca, and the Seurat of La Grande Jatte is justified in demonstrating the latter's essential direction. Absorbed though he was with theory, it would be wrong to assess Seurat as one unaware of the life around him. The statuesque figures to the right are the acme of bourgeois propriety though the lady may show pretensions to the eccentricity of `high life' by having a pet monkey on a lead. In many details it is a reality magically become unreal. A moment of charm is made lasting in the little girl running and the nearer girl bending over her bunch of flowers. The racing four that flashed across the canvases of Monet and Renoir at Argenteuil and other river craft here have the sharpness of a mini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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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comment on this vast canvas where Seurat for the first time succeeded in applying, with scientific rigor, the theory of optical mixture by the division of tones-a technique which Rubens, Watteau, and Delacroix had employed intuitively-one cannot do better than to quote the following text by Jules Christophe. It was published in Les Hommes d'aujourd'hui, No. 368, an issue devoted to Seurat. The list of motives was dictated and revised by the artist himself:

Under a blazing midafternoon summer sky, we see the Seine flooded with sunshine, smart town houses on the opposite bank, and small steamboats, sailboats, and a skiff moving up and down the river. Under the trees closer to us many people are strolling, others are sitting or stretched out lazily on the bluish grass. A few are fishing. There are young ladies, a nursemaid, a Dantesque old grandmother under a parasol, a sprawled-out boatman smoking his pipe, the lower part of his trousers completely devoured by the implacable sunlight. A dark-colored dog of no particular breed is sniffing around, a rust-colored butterfly hovers in mid-air, a young mother is strolling with her little girl dressed in white with a salmon-colored sash, two budding young Army officers from Saint-Cyr are walking by the water. Of the young ladies, one of them is making a bouquet, another is a girl with red hair in a blue dress. We see a married couple carrying a baby, and, at the extreme right, appears a scandalously hieratic-looking couple, a young dandy with a rather excessively elegant lady on his arm who has a yellow, purple, and ultramarine monkey on a leash.

There was public resistance to the picture at first, Arsene Alexandre tells us: Everything was so new in this immense painting-the conception was bold and the technique one that nobody had never seen or heard before. This was the famous pointillism.

When exhibited at the Independants, the work aroused sneers and indignation. There were outcries, Christophe goes on to say, but by standing its ground the picture's revolutionary character won out in the end. Its success was immediately hailed in La Vogue, to which Felix Feneon contributed a lively, logical, and well-informed article.

Prior to its acquisition by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the painting was owned successively by Seurat's mother, Maximillien Luce, Edmond Cousturier, and Charles Vildrac.



Seurat, Geor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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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Dec. 2, 1859, Paris--d. March 29, 1891, Paris)
Painter, founder of the 19th-century French school of Neo-Impressionism whose technique for portraying the play of light using tiny brushstrokes of contrasting colours became known as Pointillism. Using this techique, he created huge compositions with tiny, detached strokes of pure colour too small to be distinguished when looking at the entire work but making his paintings shimmer with brilliance. Works in this style include Une Baignade (1883-84) and Un dimanche apr?-midi ?l'Ile de la Grande Jatte (1884-86).

A French painter who was a leader in the neo-impressionist movement of the late 19th century, Georges Seurat is the ultimate example of the artist as scientist. He spent his life studying color theories and the effects of different linear structures. His 500 drawings alone establish Seurat as a great master, but he will be remembered for his technique called pointillism, or divisionism, which uses small dots or strokes of contrasting color to create subtle changes in form.

Georges-Pierre Seurat was born on Dec. 2, 1859, in Paris. He studied at the Ecole des Beaux-Arts in 1878 and 1879. His teacher was a disciple of Jean-Auguste-Dominique Ingres. Young Seurat was strongly influenced by Rembrandt and Francisco de Goya.

After a year of military service at Brest, Seurat exhibited his drawing Aman-Jean at the official Salon in 1883. Panels from his painting Bathing at Asnieres were refused by the Salon the next year, so Seurat and several other artists founded the Societe des Artistes Independants. His famous canvas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the Grande Jatte was the centerpiece of an exhibition in 1886. By then Seurat was spending his winters in Paris, drawing and producing one large painting each year, and his summers on France's northern coast. In his short life Seurat produced seven monumental paintings, 60 smaller ones, drawings, and sketchbooks. He kept his private life very secret, and not until his sudden death in Paris on March 29, 1891, did his friends learn of his mistress, who was the model for his painting Young Woman Holding a Powder Puff.

seurat
The Side Show
1888; Oil on Canvas, 39 3/4 x 59 1/8 in; Unsigne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Bequest of Stephen C. Clark, 1960

*쇼의 일면*
죠르쥬 쇠라는 흔히 신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인상주의로 분할주의라 일컫는 점묘법을 이용하여 신선한 작품을 선보였다.
영화 <Before sunrise>에서 여주인공이 비엔나의 한 길가에 붙어있는 쇠라의 전시회 포스터를 보며 한 말이 생각난다.
"배경이 인물에 스며드는 느낌이 좋아" 라고...
점으로 표현하여 주제와 배경이 하나로 통일되고, 화면속에 주제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색채의 병치혼합과 보색 또한 이 시기의 특징인데,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과학적인 색채학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Seurat, Georges

(b. Dec. 2, 1859, Paris--d. March 29, 1891, Paris)
Painter, founder of the 19th-century French school of Neo-Impressionism whose technique for portraying the play of light using tiny brushstrokes of contrasting colours became known as Pointillism. Using this techique, he created huge compositions with tiny, detached strokes of pure colour too small to be distinguished when looking at the entire work but making his paintings shimmer with brilliance. Works in this style include Une Baignade (1883-84) and Un dimanche apr?-midi ?l'Ile de la Grande Jatte (1884-86).

A French painter who was a leader in the neo-impressionist movement of the late 19th century, Georges Seurat is the ultimate example of the artist as scientist. He spent his life studying color theories and the effects of different linear structures. His 500 drawings alone establish Seurat as a great master, but he will be remembered for his technique called pointillism, or divisionism, which uses small dots or strokes of contrasting color to create subtle changes in form.

Georges-Pierre Seurat was born on Dec. 2, 1859, in Paris. He studied at the Ecole des Beaux-Arts in 1878 and 1879. His teacher was a disciple of Jean-Auguste-Dominique Ingres. Young Seurat was strongly influenced by Rembrandt and Francisco de Goya.

After a year of military service at Brest, Seurat exhibited his drawing Aman-Jean at the official Salon in 1883. Panels from his painting Bathing at Asnieres were refused by the Salon the next year, so Seurat and several other artists founded the Societe des Artistes Independants. His famous canvas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the Grande Jatte was the centerpiece of an exhibition in 1886. By then Seurat was spending his winters in Paris, drawing and producing one large painting each year, and his summers on France's northern coast. In his short life Seurat produced seven monumental paintings, 60 smaller ones, drawings, and sketchbooks. He kept his private life very secret, and not until his sudden death in Paris on March 29, 1891, did his friends learn of his mistress, who was the model for his painting Young Woman Holding a Powder Puff.




The Side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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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 Oil on Canvas, 39 3/4 x 59 1/8 in; Unsigned;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Bequest of Stephen C. Clark, 1960

After the outdoor light of La Grande Jatte and the studio light of The Models, here is an artificial light; the gas and acetylene lamps create the mood of traveling fairs.

This work shows to what extent Seurat was concerned with construction. It is clear here how deeply Seurat had been impressed by David Sutter's observations on the architectonics of classical works of art. The canvas analyzes itself, as it were. It would be pedantic nowadays to trace the counterpoint of verticals and horizontals, clear-cut rectangles and blurred ovals, the whole broken by a few slanting lines (the branches of the tree, the ringmaster's riding crop, the railing of the staircase behind the trombone player at the center).

This is perhaps the sole work of nineteenth-century painting that unequivocally anticipates Cubism (and even Purism). It heralds the coming of a new school, which, from 1908 on, was to revolutionize form no less profoundly than Seurat revolutionized the treatment of color.

Seurat here is at his coldest and most austere. It would seem that the balance of La Grande Jatte and The Models has given way to excessive deliberateness. We may say that like certain works of Poussin, The Side Show is a painting which has been wholly thought out in advance.

The face of the ringmaster (or perhaps animal trainer), with the same haircut and mustache twisted to turn up, will reappear in Le Chahut, where the riding crop is replaced by the conductor's ba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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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e de Paris, temps de pluie
Intersection de la Rue de Turin et de la Rue de Moscou
1877 ; Paris: A Rainy Day depicts an area of the Batignolles quarter.
Oil on canvas, 212.2 x 276.2 cm (83 1/2 x 108 3/4");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art of the Charles H and Mary F.s. Worcester Fund

*Batignolles가 지역의 비오는 날*
우산을 쓴 댄디한 파리쟝들의 모습.
빗방울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관객은 바닥의 아른거리는 그림자를 보며 비를 그려낼 수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화창한 날씨가 드문 파리, 영국의 은행가와 비슷한 지리, 뉴욕의 그리니치 광장의 건물을 연상케하는 가로등 뒤로 쭉 뻗은 건물.
안개낀 날씨탓에 은근히 사라지는 듯한 건물들의 원근법 효과와 선명히 뽑아져나온 듯 두드러진 우측 하단의 두 남녀, 특히 파리지엔느의 이어링이라는 작지만 사실적인 오브제로 하여금 이 그림을 선명하고 산뜻한 느낌으로 이끌어냄으로써 큰 효과를 가져다준다.
"미술과 패션"이들은 당시 파리의 패션을 알 수 있는 세련된 의상으로 상류층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신사의 높은 모자는 '물랑루즈' 에서 하늘높이 던져올려진 바로 그 모자임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내가 가장
빠져있는 작품 중 하나다.

Rue de Paris, temps de pluie; Intersection de la Rue de Turin et de la Rue de Moscou
1877 (100 Kb); Paris: A Rainy Day depicts an area of the Batignolles quarter.
Oil on canvas, 212.2 x 276.2 cm (83 1/2 x 108 3/4");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art of the Charles H and Mary F.s. Worcester Fund

Gustave Caillebotte, b. Aug. 19, 1848, d. Feb. 21, 1894, was a French painter and a generous patron of the impressionists, whose own works, until recently, were neglected.

He was an engineer by profession, but also attended the Ecole des Beaux-Arts in Paris. He met Edgar Degas, Claude Monet, and Pierre Auguste Renoir in 1874 and helped organize the first impressionist exhibition in Paris that same year. He participated in later shows and painted some 500 works in a more realistic style than that of his friends. Caillebotte's most intriguing paintings are those of the broad, new Parisian boulevards. The boulevards were painted from high vantage points and were populated with elegantly clad figures strolling with the expressionless intensity of somnambulists, as in Boulevard Vu d'en Haut (1880; private collection, Paris). Caillebotte's superb collection of impressionist paintings was left to the French government on his death. With considerable reluctance the government accepted part of th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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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tin-Latour, Henri 
1870 ; Oil on canvas; Mus? d'Orsay, Paris
*바티뇰의 화실*An Atelier in the Batignolles
파리 몽마르트의 한 구역 이름인 '바티뇰'이라는 거리에 모여살고 있는 인상주의자들을 여러분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팡탕-라투르가 그려낸 이 작품은 이젤 앞에 붓을 들고 앉아있는 마네를 중심으로 그 뒤에 독일 화가인 숄데레가 서 있고, 작가 이스트루가 초상화를 모델로 의자에 앉아있다.
그리고 그 옆 왼쪽으로부터 르누아르, 졸라, 에드몽 메트르, 바질, 모네가 서있다.
이번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에서 자세히 보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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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zille Frederic
9 rue de la Condamine
1870; Oil on canvas, 98 x 128.5 cm (38 1/2 x 50 1/2 in); Musee d'Orsay, Paris
*바질르의 스튜디오*
작가들은 스튜디오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기도 하는 반면, 일반인들이 궁금할 것을 알고 이렇듯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후에 나올 쿠르베의 스튜디오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꽤 높은 천정, 빛이 들어올 수 있는 넓은 창문, 그리고 때론 빛을 가릴수 있는 검은 색 커튼까지... 자세히 그의 스튜디오를 표현하고 있다.
이젤 앞에서 아마도 그 그림에 관심을 갖는 후원자에게 그림에 관하여 소개를 하는 장면인 것 같은 분위기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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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Pierre-Auguste Renoir
Frederic
1867 ; Oil on canvas, 122 x 107 cm (37 x 32 1/3 in)
Musee d'Orsay, Paris

*르느아르의 초상*
르느아르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쯤 궁금해 보았을 르느와르의 모습. 그렇게도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살결을 가진 여인들을 그려낼 수 있는 이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어찌보면 그는 피카소가 원하는 모습이다. 큰 키와 적당한 체구, 멋진 코수염, 이지적인 이목구비, 샤프한 외모로 아름다운 여인들과 마음껏 사랑할 수 있고, 때로는 그 여인들을 애태울 수 있는 바람둥이의 모습.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원하는 그의 이상형이 아닌가?
르느아르는 항상 아름다운 주제와 누드의 무한한 색변화를  즐겨 그렸으며 "나는 여인의 살결이 살아서 진동하는 듯한 효과를 낼 때까지 계속 붓을 움직인다" 고 말한 장본인이다.


Degas, (Hilaire-Germain-) Edgar

Aux courses en province(At the Races in the Country)
c. 1872 (120 Kb); Oil on canvas, 36.5 x 55.9 cm (14 3/8 x 22"); Museum of Fine Arts, Boston
절반은 그림안에, 절반은 그림밖에 -마치 사진기의 뷰파인더도 들려다보지 않고 재빠르게 사진을 찍은 것 처럼 보인다. 주제는 어디에??


Place de la Concorde
1875 (250 Kb); Oil on ca  nvas, 78.4 x 117.5 cm (30 7/8 x 46 1/4 in); No. 3K 1399; Formerly collection Gerstenberg/Scharf, Berlin; Hermitage, St Petersburg

드가의  독특한 풍경 구도는 사진에서 오는 구도로 과감히 자르거나  일부러 집어넣거나 하면서 화면을 좀 더 크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어설프지도 않았고, 그 와중에도 그의 색채는 빛을 담고 있어 우리로 하여금 3차원의 공간과 완벽한 구도를 상상하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Race Horses
1885-88 (100 Kb); Pastel on panel, 11 7/8 x 16 in; Philadelphia Museum of Art
경마장에서 보여지는 특별한 점은 중첩의 효과이다. 앞에 말 뒤에 말, 그리고 그 뒤에 말들이 계속해서  중첩되면서  자연스러운 원근법과 깊은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Edgar Degas. Gentlemen Jockeys before the Start. 1862.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Edgar Degas. Race Horses. c.1866-68.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Edgar Degas. At the Races, Amateur Jockeys. 1876-87.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Jockey on a Horse
n.d. (80 Kb); Paper, 6 1/2 x 8 1/4 in; Barnes Foundation
Photograph by Charalambos Amvrosiou


Edgar Degas. Orchestra Musicians. 1870-71. Oil on canvas. Stadtische Galerie im Stadelschen Kunsstinstitut, Frankfurt am Ma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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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Ironing. c. 1884-86.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세탁부-여자들에게 다림질이란 힘든 일, 일상의 나른한 피곤함,어둡고 가난한 이웃들의 삶의 현장을 이야기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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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bsinthe Drinker. 1875-76.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인상주의 화가들이 풍경그리는 일에 몰두했을때, 드가는 일상적인 풍경과 무대의  발레리나들이 그의 가장 아름다운 주제가 되었다.


Renoir, Pierre-Augu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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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ung Woman with a Veil. 1876.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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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at with a Pin. 190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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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at Bougival (Suzanne Valadon and Paul Lhote). 1883. Oil on canvas. Museum of Fine Arts, Boston, MA,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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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Dance (Suzanne Valadon and Eugène Pierre Lestringuez). 1883.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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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ntry Dance (Aline Charigot and Paul Lhote). 1883.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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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ulin de la Galette
1876 (170 Kb); Oil on canvas, 131 x 175 cm; Mus? d'Orsay르느와르는 이 작품에서 색을 빽빽히 칠하지 않았다. 그러므로써, 사람들의 춤추는 동작이 살아나고, 흥겨움 파티 분위기가 멈춰지지 않고 살아있는 듯한 느낌으로 그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해 주고 있다.
르느와르는 검은 색을 쓰지 않고, 겁푸른 색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검은색은 캔버스가 뚫어진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Renoir delighted in `the people's Paris', of which the Moulin de la Galette near the top of Montmartre was a characteristic place of entertainment, and his picture of the Sunday afternoon dance in its acacia-shaded courtyard is one of his happiest compositions. In still-rural Montmartre, the Moulin, called `de la Galette' from the pancake which was its speciality, had a local client?e, especially of working girls and their young men together with a sprinkling of artists who, as Renoir did, enjoyed the spectacle and also found unprofessional models. The dapple of light is an Impressionist feature but Renoir after his bout of plein-air landscape at Argenteuil seems especially to have welcomed the opportunity to make human beings, and especially women, the main components of picture. As Manet had done in La Musique aux Tuileries he introduced a number of portraits.

The girl in the striped dress in the middle foreground (as charming of any of Watteau's court ladies) was said to be Estelle, the sister of Renoir's model, Jeanne. Another of Renoir's models, Margot, is seen to the left dancing with the Cuban painter, Cardenas. At the foreground table at the right are the artist's friends, Frank Lamy, Norbert Goeneutte and Georges Rivi?e who in the short-lived publication L'Impressionniste extolled the Moulin de la Galette as a page of history, a precious monument of Parisian life depicted with rigorous exactness. Nobody before him had thought of capturing some aspect of daily life in a canvas of such large dimensions.

Renoir painted two other versions of the subject, a small sketch now in the Ordrupgard Museum, near Copenhagen and a painting smaller than the Louvre version in the John Hay Whitney collection. It is a matter of some doubt whether the latter or the Louvre version was painted on the spot. Rivi?e refers to a large canvas being transported to the scene though it would seem obvious that so complete a work as the picture in the Louvre would in any case have been finished in the studio.


( b. Feb. 25, 1841, Limoges, France--d. Dec. 3, 1919, Cagnes)
French painter originally associated with the Impressionist movement. His early works were typically Impressionist snapshots of real life, full of sparkling colour and light. By the mid-1880s, however, he had broken with the movement to apply a more disciplined, formal technique to portraits and figure paintings, particularly of women (e.g. , Bathers, 1884-87).
In 1854 he began work as a painter in a porcelain factory in Paris, gaining experience with the light, fresh colors that were to distinguish his Impressionist work and also learning the importance of good craftsmanship. His predilection towards light-hearted themes was also influenced by the great Rococco masters, whose works he studied in the Louvre. In 1862 he entered the studio of Gleyre and there formed a lasting friendship with Monet, Sisley, and Bazille. He painted with them in the Barbizon district and became a leading member of the group of Impressionists who met at the Caf?Guerbois. His relationship with Monet was particularly close at this time, and their paintings of the beauty spot called La Grenouill?e done in 1869 (an example by Renoir is in the Nationalmuseum, Stockholm) are regarded as the classic early statements of the Impressionist style. Like Monet, Renoir endured much hardship early in his career, but he began to achieve success as a portraitist in the late 1870s and was freed from financial worries after the dealer Paul Durand-Ruel began buying his work regularly in 1881. By this time Renoir had 'travelled as far as Impressionism could take me', and a visit to Italy in 1881-82 inspired him to seek a greater sense of solidarity in his work. The change in attitude is seen in The Umbrellas (NG, London), which was evidently begun before the visit to Italy and finished afterwards; the two little girls on the right are painted with the feathery brush-strokes characteristic of his Impressionist manner, but the figures on the left are done in a crisper and drier style, with duller coloring. After a period of experimentation with what he called his `mani?e aigre' (harsh or sour manner) in the mid 1880s, he developed a softer and more supple kind of handling. At the same time he turned from contemporary themes to more timeless subjects, particularly nudes, but also pictures of young girls in unspecific settings. As his style became grander and simpler he also took up mythological subjects (The Judgement of Paris; Hiroshima Museum of Art; 1913-14), and the female type he preferred became more mature and ample. In the 1890s Renoir began to suffer from rheumatism, and from 1903 (by which time he was world-famous) he lived in the warmth of the south of France. The rheumatism eventually crippled him (by 1912 he was confined to a wheelchair), but he continued to paint until the end of his life, and in his last years he also took up sculpture, directing assistants (usually Richard Guino, a pupil of Maillol) to act as his hands (Venus Victorious; Tate, London; 1914).
Renois is perhaps the best-loved of all the Impressionists, for his subjects---pretty children, flowers, beautiful scenes, above all lovely women---have instant appeal, and he communicated the joy he took in them with great directness. `Why shouldn't art be pretty?', he said, `There are enough unpleasant things in the world.' He was one of the great worshippers of the female form, and he said `I never think I have finished a nude until I think I could pinch it.' One of his sons was the celebrated film director Jean Renoir (1894-1979), who wrote a lively and touching biography (Renoir, My Father) in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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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rning Ride in the Bois de Boulogne
c.1873 (50 Kb); Oil on canvas, 261 x 226cm; Kunsthalle at Hamburg
안장을 받치고 말 허리를 둘러싼 밴드가 멋지다.
마치 '발리' 제품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것이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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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unes filles au piano (Girls at the Piano)
1892 (150 Kb); Oil on canvas, 116 x 90 cm (45 5/8 x 35 3/8 in); Musee d'Orsay, Paris
직접 촬영해온 르느와르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 어울리는 액자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그대로 올렸다.
색채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잠깐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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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Terrace
1881 (220 Kb); Oil on canvas, 100.5 x 81 cm (39 1/2 x 31 7/8");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Mr. and Mrs. Lewis Larned Collection
눈이 부시게 화사하고 아름다운 작품.
르느와르의 작품으로 그의 특유의 꽃, 여인, 소녀가 한데 어우러진 완벽한 작품이다.





Monet, Cla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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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 Regatta at Argenteuil; Mus?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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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보면 빛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다던 모네의 작품.
여름 화창한 날 파란 하늘이 비친 살아있는 바다의 모습이다.
붓터치로 인해 생생한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대가의 작품들은 어색함이 없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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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stacks at Chailly at Sunrise

 

1865 (50 Kb); Oil on canvas, 30 x 60 cm (11 7/8 x 23 3/4 in); San Diego Museum of Art

This is an early work done a quarter-century before the famous Wheatstack series of 1890-91. In those later works, Monet succeeded in expressing the immutable essence of the Wheatstacks; here they are integrated into the overall landscape. The relative sizes of the Haystacks as well as the inclination of the low-lying clouds leads the eye forcefully toward the vanishing point of the rising sun. This leftward-leaning composition is accentuated by the exaggerated horizontality of the canvas. The muted colors and relatively finished brushwork, along with the pyramidal shapes of the haystacks, convey a sense of permanence that somewhat contradicts the depiction of something as transient as a sunrise. This is an important early reference point illustrating the artistic problems Monet worked to resolve as his style develo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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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ule, Effet de Neige, le Matin (Morning Snow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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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ule, Degel, Soleil Couc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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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ule, Soleil Couchant
1891 (90 Kb); 73,3 x 92.6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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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atstacks (End of Summer)
1890-91 (190 Kb); Oil on canvas, 60 x 100 cm (23 5/8 x 39 3/8 in);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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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Lazare Station
1877 (180 Kb); Oil on canvas, 54.3 x 73.6 cm (21 3/8 x 29 in); National Gallery, London

19세기 발명품 증기기관차.  증기기관차가 증기를 붐어내면 천정가득히 흩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순간적인 빛의 효과에 시시때때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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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lars on the Epte
1891; Philadelphia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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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lars along the River Epte, Autumn
1891 (260 Kb); Oil on canvas, 100 x 65 cm (39 3/8 x 25 5/8 in); Private collection

 

Monet painted the tall poplars on the banks of the river Epte near his house at Giverny under varying climatic and seasonal conditions in 1890 and again in 1891. A row of tall vertical stems backed by a receding line of other poplars provided the basic arrangement which he observed from his boat. He began his series of Haystacks before he had finished with the Poplars, a distant line of trees often forming a background. In both series he took enormous pains to wait for and entrap exactly the light each picture demanded. Yet in spite of the stubborn effort made with the aim of attaining a complete objective truth, causing him to take out a whole set of canvases to the chosen site on which he could work one at a time as a particular phase of light allowed, another element insidiously crept in. The subject in constant repetition came to matter less and less; aesthetic considerations apart from a scientific naturalism came into play. The slenderness of the poplars seemed to take on something of the exaggerated elegance of the contemporaneous art nouveau. The color scheme became more of a contrived and artificially heightened contrast between blues and purples, oranges and yellows. The new aspect of Monet's art after he had reached the age of fifty can be appreciated in the ecstatic color of this example.

With the public the series were a great success, the Haystacks especially. Fifteen of them exhibited at Durand-Ruel's were all sold within a few days at 3,000 to 4,000 francs each. But there were some critics and some among Monet's Impressionist confrères who were dubious of the course he now pursued. The adverse opinion gained strength that Impressionism so interpreted involved too great a sacrifice of substance and construction. Yet they attached too little value to the poetic and abstract characteristics of Monet's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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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ames at Westminster (Westminster Bridge)
1871 (130 Kb); Oil on canvas, 47 x 72.5 cm (18 1/2 x 28 1/2"); Collection Lord Astor of Hever; National Gallery,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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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s of Parliament, London, Sun Breaking Through the Fog
1904 (190 Kb); Oil on canvas, 81 x 92 cm (31 7/8 x 36 1/4 in); Musee d'Orsay, Paris


Le Parlement, Effet de Brouillard
1904 (120 Kb); 82.6 x 92.7 cm; Museum of Fine Arts, St. Petersburg


Houses of Parliament, London
1905 (50 Kb); Oil on canvas, 81 x 92 cm (31 7/8 x 36 1/4 in); Musee Marmotta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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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en Cathedral: Full Sunlight
1894;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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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athédrale de Rouen, le portail, temps gris (Rouen Cathedral, the West Portal, Dull Weather)
dated 1894, painted 1892 (200 Kb); Oil on canvas, 100 x 65 cm (39 3/8 x 25 5/8 in); Musee d'Orsay,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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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athédrale de Rouen, le portail et la tour Saint-Romain, plein soleil, harmonie bleue et or (Rouen Cathedral, the West Portal and Saint-Romain Tower, Full Sunlight, Harmony in Blue and Gold)
dated 1894, painted 1893 (240 Kb); Oil on canvas, 107 x 73 cm (42 1/8 x 28 3/4 in); Musee d'Orsay, Paris

 

Monet's persistence in painting in series, beginning with the Gare Saint-Lazare and continuing in the Poplars and Haystacks, attains an impressive climax in the series he devoted to Rouen Cathedral. He began work at Rouen early in 1892, the year after he had finished the Haystacks and the last of the Poplars, and took a room above a shop in the rue Grand-Pont from which to observe the west front of the great church. He broke off to return to Giverny but resumed work at Rouen in the spring of 1893. The rest of that year and most of 1894 was spent in completing the paintings from memory. Twenty of them, ranging in effect from dawn to sunset, were exhibited at Durand-Ruel's gallery in 1895 with great success. Monet's friend Clemenceau justly praised their `symphonic splendour'. Pissarro reproved adverse criticism in the letter to his son in which he remarked on the series as `the work, well thought out, of a man with a will of his own, pursuing every nuance of elusive effects, such as no other artist that I can see has captured'.

Monet, it is clear, was as little concerned with the subject, masterpiece of Gothic architecture though it was, as when painting his Haystacks. Where the building invited and challenged his ability was in the fretting of the surface as it caught the light and the profound effects of shadow in the deep recesses. The heavy grain of his thick paint gave its own animation to the façade. Working largely from memory he exchanged the more fluent technique of the plein-air picture finished at a sitting for this entirely opposite quality of carefully worked-up impasto. In addition, without direct reference to the building in reality, a poetic element in his nature seems to have come uppermost. There remains the sensation of Gothic without its detail curiously similar to that of Gaudi's Church of the Holy Family at Barcelona (mainly built about the same time as Monet was painting his Cathedrals)--another instance perhaps of the subtle and far-reaching influence of art nouveau. Otherwise, rather than conveying the atmospheric reality of sunlight, a painting such as the example given here can be appreciated as a gorgeous dream.

La Japonaise
1876; Museum of Fine Arts, Boston
부채를 들고 기모노를 입고 요염한 포즈를 하고 있는 일본 여인.
빨간 색의 의상과 대비되는 회색 빛의 벽에는 동그란 부채가 장식적으로 표현되었다. 기모노의 의상에는 일본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여인의 서있는 포즈는 예사롭지 않은 어려운 포즈이지만 우리를 향해 웃고있는 얼굴은 앳되보인다. 바닥에도 부채가 떨어져있고, 바닥은 일본 정통 바닥인 듯 보인다.
모네가 그린 일본여인의 모습은 이 싸이트를 만들다가 발견한 것이다.

Madame Gaudibert
1868; Louvre, Paris

모네의 인물화. 귀족계급의 아름다운 여인이 고급스런 실내인테리어 안속에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은 포즈로 우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여인을 그린 모네의 보기드문 작품이 아니지 않나싶다. 푸른 커텐, 붉은 쇼올, 노란 두송이 꽃이 인상적이다.


모네의 또 다른 자료~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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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10.03.03 01:3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인상주의 그림을 볼 때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서 보면 혼란스런 색점들이 갑지가 우리의 눈 앞에서 제자리를 차지하고 생기를 띠게 되는 기적과 같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 작가가 겪은 시각적 경험을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인상주의자들의 진정한 목표였다.
    비평가들조차 떨어져서 보지 못하여서 위신을 잃게 되었다.

로마

History of Arts/Greece & Rome 2020. 4. 20. 21:29 |

 https://youtu.be/RM2D7iJHWXQ 

로마 작가 세네카는 “우리는 너무나 부유해서 보석 위를 걸어다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고 언급하였듯이, 로마는 풍족한 부를 누리고 화려한 문화를 가지게 된다. 그 부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으로 인한 것이었다. 로마는 예배의식을 하면서 그리이스 신들과 접하게 되었고, 법률과 건축공학, 토목공학으로 인해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는 건축의 위대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그리이스의 이상화된 조각과는 달리 실물을 꼭 닮은 사실적인 인간상을 다루었다. 로마의 문화는 그리이스의 문화로부터 가져와 그들의 취향과 필요에 맞게 응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이스는 완벽한 이상화된 인간이 중심이라면, 로마는 그들의 오락과 즐거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연극, 검투사들의 결투를 볼 수 있는 예술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건축은 그 시대의 문화, 경제, 사회를 읽을 수 있듯이, 로마의 건축물들은 로마의 모든 것을 대변하듯 위대한 모습으로 남아 현재의 건축에도 바탕이 된다.

   

 

Cast bronze statue of a She-Wolf (“Capitoline Wolf”), c. 500-480 BCE

 

 
Triumphal arch of Titus, Rome, c. 81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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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포룸 로마눔에 있는 콜로세움 바로 옆에 21m 높이의 개선문이 서 있습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서로마 통일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건조하기 시작하여 315년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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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드골광장 중앙에 있는 석조 개선문 입니다.
1806년 나폴레옹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획하고 추진해 나가던 중에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836년에야 완성이 된 높이 49m의 고대 로마 개선문의 양식을 따른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입니다.


 
The Pantheon, Rome, 118-125 CE

 https://youtu.be/KaY8zqYfQ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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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118~125  판테온은 만신전으로 불리며, 토목공학이 이룬 아치의 사용과 궁륭형 천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돔의 모습으로 예배의 장소로 남아있는 유일한 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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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파시아누스 황제>, 70년경, 대리석, 실물보다 큰 흉상, 높이 135cm,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실물을 꼭 닮은 미화시키지 않은 초상을 허용. 황제를 신처럼 보이게 하자 얺았다.


 
Colosseum, Rome, built under Vespasian and his son Titus, c. 70-80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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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1c말  콜롯세움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수직적으로 중첩시킨 원주와 수평의 아치를 조화롭게 통합시킨 로마식 구조와 그리이스 기둥양식들과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 스타디움의 디자인에도 표본이 되는 완벽한 작품이다. 1층은 도리아식의 변형으로 2층은 이오니아식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의 반원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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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215년경 카라칼라 대욕탕은 사교의 중심이 된 160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공중 목욕탕이었다. 카라칼라욕장은  한번에 16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대규모의 목욕탕으로 10헥타르의 부지에 지어졌다. 서기 6세기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View of the catacombs at Kom es-Shuqafa, Alexandria, 1st-2nd cent.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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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


 
2nd Style Roman painting from the Villa of the Mysteries, near Pompeii, mid 1st cent. B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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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09.09.22 00:54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리스 건축으로부터 자신의 취향을 따다 로마의 필요에 맞게 응용한 것이 로마 미술의 특징.

https://youtu.be/DBNWZxIan8g 

그리이스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문명이다.  그리이스의 아테네는 헬레네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개방적인 민주주의 형태로 발전되었으며, 미술, 정치, 연극, 철학, 법학, 논리학, 역사, 수학, 물리 등 다방면에서 창조력이 넘쳐났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중심개념을 이루었다. 그리이스 예술의 주요주제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다룬 인체조각이었다. 그리이스 철학이 사고의 명석함과 조화질서를 강조했듯 그리이스 미술과 건축 역시 균형을 강조하였다. 또한, 미술품 속에 누드를 도입한 것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리이스 종교를 살펴보면 이집트와는 달리 내세를 믿지 않았고, 신은 인간과 달리 죽지 않는 존재일 뿐 인간적 약점을 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리이스인들은 건축을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간주하고 파르테논신전과 에렉테움 신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기를 주요산업으로 하여 경제를 발전시켜나갔다. 그리이스인들은 그들이본 것에 의지하며 원근법에의한 단축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특정한 인체를 표현하는 자기의 방법을 알고자 했다. 그들은 더 이상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다 그려넣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https://youtu.be/ar8S6virCwM

https://youtu.be/Lh_ZUXMdO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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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 회화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길은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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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조각가의 제작소> 기원전 480년경, 베를린 국립박물관. 고 미술실.
"적회식' 사발의 밑바닥에 그려져 있는  장면으로  왼쪽에는 벽에 스케치들을 붙여놓은 청동 주조소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머리가 없는 조각상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이 그려져 있다. 조각상의 머리 부분은  바닥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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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작별> 기원전 510~500년경, 에우티미데스의 서명이 있는 적회식 도자기,  높이 60cm, 뮌헨 고대 미술관.           술이나 기름을 담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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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를 두고 있는 아킬레스와 아이아스>기원전 540년경,  엑세키아스의 서명이 있는 흑회식 도자기, 높이 61cm, 바티칸 박물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두 영웅인 아킬레스와 아이아스가 막사안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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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티노스 설계<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450년경,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도리아식 신전

페리클레스는 신전의 설계를 건축가 익티노스에게 위임했으며 신상들의 제작과 신전의 장식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에게 일임했다.

<아테나 파르테노스>페이디아스가 기원전 447년부터 432년 사이에제작한 신전의 거상 을 본뜬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 높이104cm,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금으로 만든 갑옷과 의상, 그리고 상아로 된 피부 11미터의 목조상. 방패와 갑옷은 강렬하고 번쩍이는 색채로 채색하고, 눈은 색깔돌로, 여신의 황금투구 위에는  그리폰(griffon: 사자의 동체에 독수리머리와 날개, 뱁의 꼬리를 가진 상상의 동물)들이 있으며 방패 안쪽  거대한 뱀역시 빛나는 보석. 신전에 들어선 사람들은 무시무시하고 신비스런  감정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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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식 신전: 에렉테움>, 기원전 420~405년경,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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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이고 있는 헤라클레스> 기원전 470~460년경, 대리석.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부분, 높이 156cm,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헤라클레스가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따러가는 일화. 창공을 어깨에 메고 있는 아틀라스에게 간청을 해서 대신 가서 사과를 따오도록 했는데,  아틀라스는 헤라클레스가 그 동안에 그의 짐을 대신 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수락. 아틀라스가 거대한 짐을 받쳐들고 있는 헤라클레스에게 황금사과를  가지고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항상 헤라클레스를 재치있게 도와주는 아테나 여신이 그의 어깨위에 쿠션을 얹어주고 있다. 원래 아테나 여신의 오른손에는 창이 들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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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의 폴리메데스<두 형제, 클레오비스와 비톤>, 기원전 615~590년경, 대리석, 높이 218cm, 216cm,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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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와 어린 디오니소스> 기원전 340년경, 대리석, 높이 213cm,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근육과 뼈가 부드러운 피부 아래서 부풀어 오르고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할 수 있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가진 살아있는 육체와 같은 인상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미술가들은 지식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성취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관심. 이 조각들을 보면 보다 나은 세계에서 온 살람들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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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벨베데레> 기원전 350년경으로 추정, 그리스 조각상을 본뜬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 높이 224cm, 바티칸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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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조각가 미론(Myron)이 만든 <원반 던지는 사람Discobolos>기원전 450년경,  미론이 만든 청동 조각을 본뜬  로마의 대리석 복제품. 높이 155cm, 로마국립박물관.
미론은 운동감의 표현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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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의 비너스>,  기원전 200년경, 대리석, 높이 202cm, 파리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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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이스 미술은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되었다. <아내를 죽이고 자살하는 갈리아인>,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과 같은 거칠고 격렬한 작품을 선호했으며 드라마틱한 주제로 인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신전의 기둥역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에 그치지 않고, 물결모양의 이오니아식에 잎사귀를 더한 화려한 코린트식의 주두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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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대왕의 두상>, 기원전 325~300년경, 리시포스의 알렉산더 초상을 본뜬 대리석 모조품.높이 41cm,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알렉산더 대왕 이후 그리스 미술을  헬레니즘(Hellenism)미술이라고 부른다.

<신들과 거인과의 싸움> 기원전 164~156년경,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 대리석, 베를린 국립 미술관, 페르가몬 미술관. Pergamon시에서 발견된 제단. 신들과 거인들과의 격렬한 싸움을 환조인 듯 계단 위로 튀어나올 것처럼 표현한  부조작품. 헬레니즘 미술은 이렇듯 거칠고 강렬한 작품을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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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스의 하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및 폴리도로스<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기원전 175~50년경, 대리석 군상, 높이 242cm, 바티칸 피오 클레멘티노 박물관.
베르길리우스의 <Aeneid>에 나오는 장면. 트로이의 사제인 Laocoon.
헬레니즘 시대에 와서는 기술 자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움직임, 표정, 긴장 등을 담고 있는 그러한 극적인 싸움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느냐 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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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트라케의 니케 [NIKE of Samoth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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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의 대리석 조각. 종류 대리석 조각
제작연도 BC 190년경
소장 파리 루브르미술관

본문
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 BC 190년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하늘에서 뱃머리에 내려와 서 있는 날개가 달린 니케(승리의 여신)를 표현하고 있다. 머리부분과 양 팔뚝은 없어졌다. 1863년 사모트라키섬에서 발견, 로도스섬 사람들이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에 대한 전승을 감사하여 사모트라키섬 카베이로 신역(神域) 가까이에 세운 상(像)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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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09.09.22 00:13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그리스 미술이 찬양받는 것은 규칙의 준수와 규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조각가로 훈련을 받은 바 있는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이것을 미술가들에게 강조했다. 미술가들은 '감정이 육체의 움직임에 미치는' 과정을 정확하게 관찰함으로써 "영혼의 활동" 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활동' 이라고 불렀던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당시 그리스 거장들이 사용한 것은 육체와 그것의 움직임이었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인가 말로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2. @artnstory Art&Story 2018.09.02 17:2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https://youtu.be/gtKgfS1QwLk

대림미술관 http://www.daelimmuseum.org/

 

 

대림미술관

 

www.daelim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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