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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 갈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내가 가끔 찾는 뉴욕에서조차도  볼 수 없었던
르네 마그리뜨의 작품은 처음이다. 정말 멋졌다.
두번이나 갔다. 부족하다. 하지만, 시간이 좀처럼 더 이상 나지 않는다.
나와 전시를 갔다온 사람이 다음날, 그 감동을 속시원하게 표현한다.
"파리에 다녀온 것 같다고"
그랬다. 딱 그런 감동이고 기쁨이었다
.

중학교, 아니 로댕과 이중섭의 도록을 찾아서 정확한 때를 짚어봐야겠다.
그 이후로 나는 시각예술 에 심취해있다.
해외로 나가서 본 전시들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릴 만한 양,  눈이 행복하다고  잠깐  쉬고싶다고 소리칠 정도의 질, 을 두루 갖추었다.
이제 그런 전시들을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다니.
영주랑 간 첫 전시였는데 좋은 전시를 봐서 좋으네 더.

 

(Rene Francois Ghislain Magritte, 1898.11.21~1967.08.15)

-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

- 고립, 변경, 사물의 잡종화, 크기의 변화 등을 이용한 데페이즈망 기법

- 약력 : 1926년 벨기에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

             1927년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 개최

             1929년 '이미지들의 배반' 첫번째 판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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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Heartstring, 1960
    Oil on canvas 114 x 146cm

서울시립미술관 2, 3층 전시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 2007년 4월 1일 일요일
http://seoulmoa.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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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적 창안>초현실적인 해안,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경계, 반인반어,

 

 

 

 

 

 

 


1898년 벨기에에서 출생한 마그리트는 1916년부터 브뤼셀의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emie des Beaux-Arts)에서 수학하면서 미술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10여 년간 입체주의와 미래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 경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화풍을 창조해 나가기 시작했고, 1927년부터 3년 간 프랑스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리에 머물기도 했다.
1925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인 앙드레 브르통의「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했던 것과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담배 파이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모순 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폭에 결합시키거나, 어떤 오브제를 전혀 엉뚱한 환경에 위치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1950년대에 들어서 마그리트는 기존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양식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vache) 시기의 작업이 그것이다. 인상주의 작가, 특히 르누아르의 영향을 반영하는 주제와 화려한 색채, 표현적인 붓 터치로 특징지어 지는 마그리트의 인상주의 시기 작품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된다. 바슈 시기는 1957년 단 2주에 걸친 예외적인 실험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에 대한 영향과 동시에 풍자를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인상주의 시기와 바슈 시기를 제외하면 마그리트의 작업은 1930년대 초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주제와 이미지(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단어의 사용, 인간의 조건, 중절모를 쓴 남자)가 평생의 작업에 걸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오브제의 데페이즈망 뿐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로 대표되는 말과 사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 현실의 3차원 공간과 캔버스 위의 2차원 공간 간의 모순을 다룬 인간의 조건 등 마그리트의 예술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기발한 발상, 관습적 사고의 거부,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시적인 조형성 등은 초현실주의자로서의 마그리트의 면모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보다 경도되었던 것에 비해 마그리트의 작품은 철저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가진다. 실제로 철학에 조예가 깊었고, 화가라는 이름 대신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철학자처럼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철학적인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고 동·서양의 구분을 넘어 음악(비틀즈의 음악과 애플 레코드사의 사과모양 로고), 영화(매트릭스 시리즈), 문학(김영하의 <빛의 제국>), 교육(대학 입시 논술 고사 문제로 출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마그리트를 초현실주의의 거장에서 더 나아가 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칭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겨울비: 착시효과?   

멀어질수록 옅은 색채와 작아지는 사람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 사람들의 모습이 각기 다르게 그려졌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저 “겨울비” 속의 사람처럼 하루에도 수도없이
많은  모습으로 순간순간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새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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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완벽한 지적 능력을 요하는 경향이 있어서 미술가의 미적, 회화적 관심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자의 탐구의 대상이다.
무미건조하고 사실적인 그의 양식은 종종 비회화적이고 아카데믹하다고 묘사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명확한 사고를 보여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마그리트의 회화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 사고는 관념이 아닌 이미지와 함께 나간다. 이러한 회화의 의미는 기존의 어떠한 문학적인 설명이나 해석으로도 설명되지 않지만, 우리의 상식적인 믿음을 끊임없이 연구, 분석하고 존재의 모순을 조정하기 위하여 애쓴 철학자의 기질을 나타낸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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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라는 글자가 무슨 뜻인가 봤는데 ‘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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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뜨의 어록

나는 나의 과거를 싫어하고 다른 누구의 과거도 싫어한다. 나는 체념, 인내, 직업적 영웅주의, 의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감정을 혐오한다. 나는 또한 장식미술, 민속학, 광고, 발표하는 목소리, 공기 역학, 보이스카우트, 방충제 냄새, 순간의 사건, 술 취한 사람들도 싫어한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 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 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 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어떤 초상화는 그의 모델을 닮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모델이 그 초상화와 닮기를 바란다.
   
나는 고대 혹은 현대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나에게 있어 회화는 색채를 병렬하는 예술이며, 이런 방식을 통해 색채는 실제적인 면을 상실하고 대신 영감을 받은 사유를 드러내게 한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
   
초현실주의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가졌던 것과 유사한 자유를 실제 삶에서도 요구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림에 가장 적절한 제목은 시적인 것이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다소 생생한 감정에 비교될 수 있는 제목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적인 제목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를 놀라게 하거나 마법에 빠져 들게 한다.
   
나는 영화예술의 기초를 이해하고 있지만  회화를 통해서만 나의 생각들을 표현 할 수 있다.
   
말은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언어가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지가 보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려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과 말로써 표현되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다.
   
나무 테이블의 다리들이 숲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들에게 부여된 순수한 존재를 잃어  버린 것이다.
   
나는 우리의 멋진 말들의 목에 매달린 쇠 방울들이 구렁텅이의 가에 있는 위험한 식물처럼 자라난다고 믿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인의 나체를 하늘로 변화시키는 것은 마술의 행위이다.
   
구와 집은 나무에게 불가사의한 방법들을 제안한다. 커튼은 쓸모없는 것을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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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모델>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발과 가죽구두의 결합이 현실에서 기이한 관습을 드러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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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 기법은
어떤 사물을 원래 있던 환경에서 떼어내 엉뚱한 곳에 갖다놓는
‘고립’,
독수리를 돌의 재질과 같이 변형시키는 식으로 사물이 가진 성질 가운데 하나를 바꾸는 ‘변경’,
성채와 나무 밑 둥을 결합하는 식의 ‘사물의 잡종화’,
작은 사물을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식의 ‘크기의 변화’,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두 사물을 나란히 붙여놓는 ‘이상한 만남’,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 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 안에 존재하는 ‘패러독스’ 등의 방법으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두 사물을 아예 합쳐 새로운 것을 창조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이것을 데페이즈망 기법이라고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물섬’이라는 그림은 나뭇잎이 마치 새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새가 보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오히려 그것이 나뭇잎이 아니라 그것이 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를 건드리게 만드는 점이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의 형체를 그려 그 안을 마치 하늘처럼 그린 ‘회귀’라는 그림 역시 이미지의 중첩을 통해 마그리트의 작품 스타일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것이 구름 벽지의 시초이고, 또 흔히 들고 다니는 구름 우산도 그의 작품을 인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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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인형 

저 동그란 방울같이 생긴  흰 공은 마그리트가 “말방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20세기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말의 목에는 방울이 달려 있었다고한다.

즉, 이 그림에서는 완전함을 의미하고, 움직일때 딸랑거리는 방울은 존재감을 나타낸다. 
<김새미 글>


“여인의 나체를 하늘로 변화시키는 것은 마술의 행위   이다.”


 르네마그리트의 생애에 걸쳐 2층과 3층을 돌고 나오면 ‘조제트’라는 이름이 남는다.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한 여자를 평생 사랑했다.

 상체로 갈수록 하늘과 동화되는 그녀의 모습은 신성하기까지 하다. 사랑에 빠진 눈으로 봤을 때 가능한 ‘검은 마술’이다. <김정경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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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assive comic figures : 무표정한 냉정한 얼굴
hat     the average man  :평균의 보통사람. - dentify
pipe   privileged position   :특권 계층- demonstration, intensity of desire
Posted by @artnstory Art&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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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tnstory Art&Story 2013.08.08 13:0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트롱프뢰유(Tromp-l’oeil)는 사실처럼 보이게 해 관객을 속이는 그림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눈속임’ 이라는 뜻이다. 제욱시스의 포도, 파라시오스의 커튼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산 것과 죽은 것, 구겨진 종이, 편지꽂이, 사물에 비친 자화상 등 트롱프뢰유는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기 위해 대부분 캔버스에 그리기 보다 벽이나 실제가구, 나무판에 그린 그림이 많다.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트롱프뢰유’ 전시에서 모방과 혼성모방 그리고 일루전 작품들을 통해 진짜 같은 눈속임의 경탄과 유쾌함을 맛볼 수 있다.

  2. a 2020.05.24 23:4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데 키리코

    고전 문화와 독일 낭만주의의 훈련을 받은, 초현실주의의 개척자이자 이탈리아 현대미술의 거장인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는 그의 남동생 알베르토 사비니오와 함께 새로운 예술 개념의 기초를 발전시켰다. 뮌헨의 예술아카데미 수학 당시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뵈클린과 클링거의 작품을 발견한 키리코는 보이는 것 이상에 다다르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한다. 1911년 가을, 파리에서 입체파의 아방가르드 근대작가들의 혁명을 접촉한 후로 키리코는 신비하고 독특한 미적어휘를 구성하게 되었고, 빠르게 당시대의 일부 예술인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전시는 키리코의 최초 미술상이었던 폴 기욤의 역할과, 1915년 이탈리아 페라라로 돌아와 ‘형이상학파’의 형성 계기가 되었던 화가 카를로 카라와 조르조 모란디와의 교류에 대해서도 살펴본다.